[시론]조대엽/'386' 무엇이 문제이길래…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09분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온 나라를 긴장시킨 가운데 정치권에서 ‘인적 쇄신론’이 등장했고, 그 표적으로 청와대 386세대 참모들이 거론됐다. 급기야 이광재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물갈이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요직에 있는 분들이 386인 이 실장에게 ‘모욕을 당했다’느니 ‘장관들이 그 앞에서 설설 긴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권력 내 386의 행태가 과연 어떠했는지 그 내막을 상세하게 알기는 힘들다. 국정 난맥의 책임이 청와대 386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정치권의 또 다른 힘겨루기가 아닌가라는 짐작도 해본다.

▼‘인적쇄신’ 정치권 전반의 문제 ▼

격렬한 저항의 80년대가 지난 뒤 386세대는 정치현장에서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정치개혁의 희망으로 여겨졌고, 때로는 한심스러운 ‘정치꾼’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6월의 아스팔트 위에 민족과 민중의 이름으로 온몸을 내던졌던 그들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던 탓이리라.

재신임 정국에서 다시 부각된 인적 쇄신론은 386세대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권력핵심의 문제다. 그러나 참여정부 안에서 향후 386세대의 역할을 가늠해본다는 측면에서는 바로 이 시점에서 정치권 386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시도하는 것도 무익하지는 않을 듯하다.

우선 386세대에게 사회변혁 운동세대로서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2000년대 들어 마흔을 넘기 시작한 그들은 이제 현실정치인이다. 세대로서의 연속성에 주목해 보면, 60년대 경제적 열망의 시대에 자라 70년대의 정치적 긴장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은 마침내 80년대를 정치적 분출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들의 성장기는 대부분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머물기 때문에 권위주의와 연고주의의 문화적 연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말하자면 그들은 ‘신군부에 대한 도전자’이기에 앞서 ‘박정희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저항’이라는 가치와 ‘권위주의문화에의 적응’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현실정치에 적응한 그들의 문제는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동시에 거리를 내달리던 이념의 세대가 이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의 거대 변동을 담당하는 선두에 서 있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제 시민단체를 주도하고 벤처기업을 일구며 지역과 직장에서 풀뿌리민주화에 헌신하고 있다. 386은 우리 사회에서 컴퓨터문화를 가장 빨리 수용한 세대이기 때문에 ‘정보화 신세대’와 인터넷 속에서 쉽게 결합했고, 그 결합이 2002년의 월드컵축구대회와 촛불시위, 대선에서의 정치변동을 이끌어낸 놀라운 위력을 보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대한 구조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가 변화하고 정치 경제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급격하고 거대한 질서의 변화는 여기에 적응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의 격차를 그만큼 크게 벌려놓고 있다. 여기에서 세대간의 긴장이 확산될 수 있고 다양한 수준의 권력 갈등이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을 세대교체나 세대도전이라는 권력 갈등의 문맥으로만 읽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사회의 패러다임 이동이라는 구조전환의 시각에서 독해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세대도전 아니라 구조전환의 시기 ▼

노무현 정부의 386 스스로도 권력의 중심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기에 앞서 자신들의 등장이 이러한 거대 전환의 파생효과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또 ‘설설 기는 장관’보다는 ‘뻣뻣한 386’이 지탄받는 이치를 깨달아야 할뿐더러, 성공적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국가 경영의 동반층을 넓혀가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386측근들은 ‘감성의 정치’를 ‘이성의 정치’로 바꾸고, 코드에 묶인 ‘배제의 정치’를 과감한 ‘포용의 정치’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혼미한 재신임 정국이 그러한 전환의 계기가 됐으면 싶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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