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政 충돌…정부 “타협없다” vs 노동계 “정부의 선전포고”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08분


코멘트
26일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화물연대 파업지도부 검거에 나서자 화물연대 사수대 대원들이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가 민주노총 본부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원대연기자
26일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화물연대 파업지도부 검거에 나서자 화물연대 사수대 대원들이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가 민주노총 본부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원대연기자
운송료 인상을 둘러싼 업계와의 마찰에서 비롯된 전국운송하역노조 산하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정부의 초강경 대응으로 노-정(勞-政) 대결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단호한 대처’ 방침에다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추진에 맞서 노동계가 “정부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어 노-정간의 대결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정부의 강경대응=정부는 25일 노-정 협상을 재개하자는 화물연대의 제의를 일축하고 26일 밤 12시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5월 약속한 경유보조금도 지급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백기(白旗) 투항’을 요구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25일 경제일간지와의 합동회견에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어떤 집단과도 타협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26일 국무회의에서도 화물연대 사태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재차 지시했다.

경찰은 즉각 화물연대 지도부 검거에 나서 이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부산과 서울의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5월 화물연대 1차 집단행동 때와는 사뭇 달라진 것. 당시 정부는 “불법 집단행동이라도 정당한 요구는 수용해야 한다”며 경찰력 투입을 자제했다.

정부가 전선(戰線)을 확대하면서까지 민주노총 압수수색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낸 것은 지도부를 ‘억제’하지 않고는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 반발=민주노총은 26일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대통령 왜 이러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민간 파쇼를 방불케 하는 광기(狂氣)어린 노동탄압”이라며 반발했다.

단병호(段炳浩) 위원장은 압수수색 계획과 관련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실제로 집행한다면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이후에도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에서 “정부가 출범 초기 천명했던 ‘대화와 타협’의 원칙이 실종됐다”며 “정부가 민주노총에 경찰력을 투입한다면 화물연대 차원을 넘어 전체 노동계와의 극한 대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파장과 책임은 모두 정부가 져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도 예상을 뛰어넘는 정부의 공세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정부가 6월 28일 철도노조 파업 때 농성장에 경찰력을 투입해 재미를 봐 이번에도 강하게 나오리라고는 예견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대결로 치닫는 노-정=참여정부 출범 후 수개월간 ‘밀월(蜜月) 관계’를 유지했던 노-정 관계가 이번 화물연대 사태를 고비로 급속히 냉각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당장 주5일 근무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통과 저지를 위한 28, 29일 국회 앞 노숙농성의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9월 초 발표될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동계에 불리한 내용을 담을 경우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화물연대도 일단 경찰력 투입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싸우는 ‘산개 투쟁’을 계속할 계획이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적극적인 운송 방해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줄곧 노동계에 끌려 다니며 경제까지 망칠 경우 제대로 정국을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