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부속실장 사표수리]"단순한 술자리" 거짓말로 드러나

  • 입력 2003년 8월 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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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민정수석실은 양길승(梁吉承) 대통령제1부속실장 향응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청탁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5일 발표된 진상조사 결과는 1차 자체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언론에서 제기했던 의혹을 상당 부분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사권을 갖지 못한 자체 조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당사자였던 양 실장은 7월 31일 언론 보도 직후 해명서를 통해 “술자리에서는 수사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없었다”고 밝혀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청탁 압력행사 여부=청와대는 1차 조사 때는 이 사건을 양 실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단순 ‘음주사건’으로만 처리했다. 그러면서 술값이 겨우 43만원이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다만 이번에는 언론에서 제기했던 청탁 의혹에 대해 민정수석실은 K나이트클럽 소유주 이모씨와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으로부터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건 관련자들은 당초 청탁 여부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할 자리가 아니었다”며 강력히 부인했으나 이 부분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측은 검찰 경찰 법무부 경찰청감사관실 등에 확인한 결과도 청탁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련자들의 진술이 처음부터 계속 뒤바뀌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실제 청탁 여부를 파악하려면 검찰수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술값 규모 ‘말 맞추기’ 논란=1차 조사 때 드러난 43만원의 술값은 실제 조사결과 윈저17년산 위스키 7병과 맥주와 안주, 여종업원 봉사료 등 215만원어치로 밝혀졌다.

하지만 13명의 술자리라는 점과 여종업원 3명의 봉사료에 특히 양 실장이 거부했다는 ‘2차’ 비용도 포함됐다는 점에서 215만원이라는 술값도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다.

여기에다 술자리 참석자수에 대해서도 오씨 등 관련자들은 “양 실장, 오씨, 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씨, 도지부 간부 김모씨 등 4명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조사결과 여종업원 3명의 봉사료와 술값을 이씨와 나누어 부담한 이 나이트클럽 공동소유주 한모씨의 여자친구 2명 등 모두 12명이나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술자리의 분위기가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퇴폐적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둘러대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술자리 참석자 중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씨의 참석 사실을 끝까지 숨긴 것은 노 대통령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양 실장 동정론?=민정수석실은 양 실장이 △이씨가 사건 연루자라는 사실을 몰랐고 △실제로 청탁을 하거나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접대부의 동숙을 거절한 점 등을 들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도 이날 보고를 받고 “성실한 사람인데 안타깝다. 대선 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또 문 수석도 기자간담회에서 “부적절하기는 했지만 반드시 사표를 수리해야 할 정도로 책임이 큰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며 양 실장에 대한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실제 민정수석실 내에서는 ‘몰래 카메라’ 파문 때문에 양 실장이 희생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와대 내의 동정론에 대해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는 핵심측근의 부적절한 처신이란 점에서 국민적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안이한 사태인식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풀리지않은 의문▼

대통령민정수석실은 이날 양길승(梁吉承)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향응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조사 결과는 99% 이상 틀림없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보였으나 여전히 여러 대목에서 의문이 남는다.

우선 양 실장이 충북 청주시 K나이트클럽 사장 이모씨와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에게서 “(조세포탈 등에 대한 경찰 조사와 관련) 억울하니 알아봐 달라”는 청탁을 받은 뒤 과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영향력 행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 이씨 등의 ‘과잉접대’ 쪽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이는 양 실장 본인 및 술자리 참석자들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어서 사실관계를 입증할 자료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당초 양 실장은 “대선 때 열심히 뛴 사람들이 섭섭해 하니 한번 격려해 달라는 오 부지부장의 말을 듣고 내려가게 됐다”고 말했으나 정황에 비추어 이날 술자리는 청탁을 위해 기획됐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당초 2차 술값을 오씨가 지불했다는 해명과 달리 이씨와 그의 동업자인 한모씨가 나눠 냈던 것으로 밝혀진 점도 6월 28일의 술자리가 청탁을 위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양 실장이 선물을 받은 사실이 새로 드러나는 등 이번 조사 결과가 1차조사 때와 큰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처음부터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양 실장이 3차 술자리인 포장마차를 나와 호텔로 동행한 여종업원의 행적에 대한 해명도 석연치 않다. 양 실장과 오 부지부장은 6월 29일 오전 2시경 여종업원 2명과 함께 R관광호텔에 투숙했으나 양 실장만 호텔방까지 따라온 여종업원을 다시 돌려보냈다는 게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접대여성은 빚 문제로 술집과 마찰을 빚고 업소를 떠났기 때문에 본인에게 직접 확인을 하지 못하고, 관리 마담에게만 해명을 들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음모설’ 논란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청와대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른바 몰래카메라와 음모설 등으로 인하여 본질에 비해 파문이 터무니없이 과다하게 확산되고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음모론을 부인했다. 그러나 음모설이 흘러나온 진원지가 바로 청와대였다는 점에서 ‘음모론’의 싹이 자라지 않도록 청와대 내부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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