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18 광주, 국가권위 실종]'대통령 노무현' 명패 조화 짓밟혀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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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광주 운정동 국립5·18묘지 앞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로 인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행사장 입장이 18분간 지연된 것 외에도 곳곳에서 상상하기 힘든 ‘무법상황’이 벌어졌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경호원차를 탄 대통령=18일 오전 노 대통령을 태운 차량 행렬은 한총련 학생들의 점거 시위로 5·18묘지 정문 진입이 불가능해지자 후문으로 우회했고 후문에서 내린 노 대통령 일행은 행사장까지 100여m를 걸어 들어갔다. 대통령 일행의 차량들은 기념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문을 통해 5·18묘지 입구 근처에 있는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20분간 대기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정문이 여전히 봉쇄되자 노 대통령 내외를 태운 전용차와 경호차량은 행사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후문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후문 앞에 3∼4m 높이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차량 통과가 어려워지자 노 대통령 내외는 차에서 내렸고 이어 경호차량들은 정문을 통해 다시 후문 쪽으로 돌아왔다. 이때 노 대통령 내외는 전용차보다 앞서 도착한 경호차량(검은색 밴승합차)에 타고 서둘러 다음 행사장인 전남대로 떠났다.

이를 지켜본 김모씨(37)는 “대통령이 전용차가 아닌 경호차량을 타고 떠나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며 “황급히 차에 오르는 대통령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남대에 도착할 때는 전용차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전차량들 수난=기념식 직후 노 대통령의 ‘후문 퇴장’을 위해 대기 중이던 의전차량들이 한때 시위 학생들에게 포위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학생들은 낮 12시15분경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후문에 주차된 의전차량을 에워싼 뒤 차를 흔들어댔으며, 일부는 책자 등으로 내리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예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자 대통령 경호팀 관계자는 “대통령 의전차량이니 제발 과격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짓밟힌 조화=기념식이 끝나고 정치인 등 행사 참석자들이 빠져나간 뒤 5·18추모탑 앞에 놓여진 노 대통령의 조화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 경찰은 일단 시위가담 학생 중 일부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다른 참가자일 가능성도 있어 함께 수사 중이다.

노 대통령의 조화는 기념식 직후 쓰러져 짓밟힌 채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쓰인 부분이떨어져 나가는 등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 훼손된 조화는 기념식이 끝난 지 3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3시반경 묘지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발견했다. 경찰은 이날 밤 8시경 SBS TV를 통해 이 같은 조화훼손 장면이 보도되자 뒤늦게 27명으로 ‘훼손자 검거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으나 현재까지 마땅한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기념식장 정문 내준 경찰=학생들이 노 대통령의 입장 전 기념식장으로 통하는 정문 안에까지 진입했던 것은 경찰이 ‘상식 이하’의 경비작전을 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대통령이 참석한 5·18기념식장 외곽 경비를 전남청 경비과장의 지휘로 광주 서부경찰서와 전남 여수, 순천, 목포경찰서에 맡겼다. 반면 그동안 5·18묘지 경비를 담당해온 북부경찰서는 노 대통령의 강연이 예정된 전남대에 배치하는 등 ‘적재적소’의 경비배치를 하지 않은 것.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묘지 주변에 배치된 경비 경찰관들이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못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했으며 우왕좌왕한 측면이 있다”고 시인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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