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준/'위기관리시스템' 파업중인가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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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국가위기관리 능력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민생과 국가경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로 방미외교를 떠나기 직전까지 직접 챙겨야만 했던 부산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문제는 대통령의 출국직후 총파업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것은 대통령의 고향에서부터 현 정부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이번 일로 정부출범 이후 기존의 국가위기관리 체제를 해체하고 노 대통령 자신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국가운영의 취약성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는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염려했던 일이어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재구축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마추어적 국가기구개편 禍불러 ▼

지금의 국가위기에 대해 대통령과 참모 및 각 정부부처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추어적인 국가기구의 개편과 인적 청산이 위기를 키운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미숙한 청와대 조직 개편, 기존 위기관리체제의 해체, 위기대응 컨트롤 타워의 부재, 운동권 출신 인사중심의 인치(人治), 무기력한 책임총리제와 국무조정실, 대통령의 친 노동 통치스타일과 장관의 대통령 눈치 보기, 인적 청산과 인사의 전문성 약화 등이 위기를 키운 요인들이다.

이 가운데 먼저 대통령과 집권핵심세력이 국가위기의 관리자인지, 방조자인지, 아니면 조장자인지 스스로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주류의 운동권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일정규모의 위기조성을 통해 변화와 개혁을 이루었고, 그 결과 지금은 국가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친 노동성향 등의 코드를 강조하는 대통령 자신도 그러한 운동방식의 대표적인 수혜자일 것이다. 장관이나 공무원들의 대통령 눈치 보기와 노조나 시민단체에 대한 판단 유보가 위기를 키운 셈이다. 이로 인해 불법파업 정당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정부부처의 합법적인 법 집행이 지연된 것이다. 이제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비주류나 위기 조장자가 아니라 주류와 위기관리자로 스스로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다음으로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조속히 재구축해야 한다. 국가기구나 위기관리 체제는 통치의 도구일 뿐이다. 오랜 기간 위기관리체제로 정착된 것을 민주화 이후 해체하고 와해시키는 것은 국가해체와 다름 없다. 다만 목적과 용도를 민주화 이후 시대에 적합하게 재정립하면 된다. 과거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은 관계기관 대책회의, 국가정보원, 청와대, 당정협의회, 관계 국무위원회의, 총리 국무조정실 등의 협력체제로 운영되어왔다. 신속한 정보 수집과 효과적인 위기관리 방안 마련 및 효율적 집행이 그 핵심적인 기능이었다. 이들이 불법적이고 비공개적인 방법으로 집권세력의 정권안보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철저하게 방지하면서 국가위기관리기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때 이 기구에 전문가가 아니라 코드 맞는 사람으로만 채운다면 여전히 또 다른 정권안보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고, 국가위기관리 기능은 떨어질 것이다. 최근의 국정원 인사도 이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 ‘책임총리제’ 등 보완책 찾아야 ▼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조속히 재구축해 국가의 안보와 번영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소규모의 위기조성을 통한 변화와 개혁 및 정계개편이 아니라 기존 위기관리기능의 회복을 통한 국가위기 극복이 시급하다. 공식체계 중심으로의 청와대 조직 재편, 책임총리제 가동을 통한 총리와 대통령의 역할 재분담도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가 한미공조를 통한 북핵 위기 극복으로 나타나고,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이 화물연대 총파업을 푸는 컨트롤 타워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국가위기관리는 동북아중심 국가나 초일류국가가 되기 위한 가장 원초적 단계의 일이며, 대통령의 으뜸가는 의무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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