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다른 할 일도 많을 텐데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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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언론보도 ‘일일보고서’ 제출을 지시했다고 한다. 보고서의 골자는 각 부처와 관련된 매일 매일의 언론보도 성격을 긍정, 단순, 건전 비판, 악의적 비판, 오보 등 5가지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류된 보고서는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10시 사이에 청와대에 보고되고 이를 부처 성격에 따라 정책상황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홍보·민정수석실에서 취합, 분석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청와대가 아침부터 언론보도 ‘일일보고서’에 할애해야 할 시간이 적지 않을 듯싶다. 물론 바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언론보도 분석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가 그 일의 중심적 역할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라크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파병국이 될 우리의 국익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는 북핵위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틈새가 벌어진 한미동맹관계는 어떻게 복원할지 등 국가적 현안이 쌓여 있지 않은가. 경제 위기도 발등의 불이어서 서민들이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고 불평이 크다. 이런 때에 청와대가 매일 아침 언론보도 분석에 시간을 쏟는 모습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언론보도 성격을 분류하는 잣대가 주관적이며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건전 비판’과 ‘악의적 비판’의 기준은 무엇인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더라도 관련 부처가 ‘오보’라고 주장할 때 입증방법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 청와대의 언론대책이 시대착오적인 언론통제라는 항간의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런 식이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는 ‘권력과 언론간의 건전한 긴장관계’도 성립되기 어렵다.

청와대는 정부부처에 대한 언론보도 ‘일일보고서’ 제출 지시를 재고하는 것이 옳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청와대가 해야 할 다른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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