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5억 北에 갔다]'對北 퍼주기' DJ끌고 現代밀고…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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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對北사업▼

‘대북 송금 의혹’이 사실로 판명됨에 따라 금강산 사업을 포함한 현대의 대북(對北) 사업이 역풍을 맞게 될 전망이다.

50년 분단 장벽을 허문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강산 관광이나 한반도 최대 공업단지를 목표로 추진중인 개성공단 사업이 ‘뒷거래’를 통해 이뤄졌다는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금강산 관광 사업 등 각종 대북 사업이 남북 위기 때마다 완충 역할을 해온 만큼 전면 중단되기는 어렵지만 내달초로 잡힌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 일정 등이 속도와 규모 면에서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처럼 현대그룹에 대북 사업은 양날의 칼이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퍼주기식 사업 추진으로 현대그룹의 와해에도 일조했다.

현대의 대북 사업은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고향사랑’에서 출발했다.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그는 89년 1월 허담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초청으로 극비리에 방북, 김일성(金日成) 주석과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의 기초가 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이후 92년 대통령선거 출마 등 정치외도와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압력으로 대북 사업의 뜻을 펼치지 못한 그는 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과 만나면서 비로소 대북 사업을 가시화 했다.

고 정 회장과 아들인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98년 6월 500마리의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 다시 방북,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합의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사업, 남북 영농사업, 평양체육관 건립, 개성공단 개발사업 등으로 사업규모를 확장시켰다.

하지만 98년 11월18일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현대아산은 부진한 관광실적에다 금강산 현지시설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4500억원의 자본금을 모두 까먹었고 정부 지원을 받아 근근이 관광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그 돌파구로 지난해 9월 북한과 금강산 육로관광 및 관광특구 지정에 합의했고 11월에는 이 지역 토지이용권을 50년간 확보했다. 현대는 또 99년 10월 고 정 회장이 방북 체결한 공단건설사업 합의서를 바탕으로 꾸준히 협의해 왔고 지난해 11월 북한은 ‘개성공업지구법’으로 화답했다.

현대아산은 겉으로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사업은 일정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일이 어디로 튈지는 현재 불투명한 상태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對北송금 당시 현대상선은▼

현대상선이 북한에 2000여억원을 비밀 송금한 것으로 알려진 2000년 6월은 현대 그룹 계열사들이 이른바 유동성 위기를 겪던 시기다. 계열사 중에 이렇다 할 금융사가 없는 정몽헌(鄭夢憲) 회장은 현대상선에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창구’ 역할을 맡겼다. 현대건설을 대신해 현대상선이 새로운 지주회사 노릇을 하게 된 것. 현대상선은 정 회장 계열사 가운데 비교적 현금흐름이 좋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창사이래 그때까지 20여년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우량회사였다.

그러나 현대상선도 계열사 지원 부담을 짊어지면서 심한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그해 초부터 시작된 ‘왕자의 난’ 등이 겹치면서 현대상선은 영업 실적과는 무관한 이유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부실한 계열사들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빚독촉이 거세졌고 그 여파로 현대상선도 빚독촉에 시달렸다. 만기가 된 어음이나 회사채에 대한 상환요구가 빗발치면서 급전을 막느라 현대상선은 안간힘을 썼다.

여기에다 1998년 이후 금강산 관광 사업 지원으로 누적된 적자가 2000억원을 초과하면서 회사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현대상선의 생존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는 위기상황으로 몰린 것.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선 “건실한 회사가 오너 형제 기업들 때문에 망가지게 됐다”는 불만이 많았다. 당장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견도 공공연히 제기됐다.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계열사 지원과 대북사업을 놓고 정 회장과 마찰을 빚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관련 당사자들 반응▼

▽박지원 비서실장

▽박지원=한나라당으로부터 대북 송금을 주도한 당사자로 지목돼온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오전까지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으나 이날 오후 감사원 발표 이후에는 특별한 입장 표명없이 언론과의 접촉을 끊었다.

박 실장은 또 이날 오전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내정자가 2235억원의 대북 송금 사실을 확인해준 당사자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말이 나오자 “조순용(趙淳容)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유 내정자에게 알아보니 사실을 잘못 알고 말한 것”이라며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유 내정자도 “기자들이 물어보기에 박 실장과 인터넷신문 기자들이 만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엄낙용 산은 총재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의혹을 국회에서 증언했던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총재는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강원 모처에서 검찰 소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부인 홍영신씨가 밝혔다.

홍씨는 엄 전 총재가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 대출이 청와대 고위층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고 증언한데 대해 “그 상황에서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홍씨는 또 “남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다”며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고통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소환 요청이 오면 곧바로 응하겠다는 게 엄 전 총재의 입장.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임동원 특보

2000년 현대의 대북 송금과 관련,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시 국가정보의원장이었던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이날 비서관을 통해 ‘노코멘트’라는 입장만 전하고 외부 접촉을 일절 끊었다. 임 특보는 이날 예정됐던 언론사 간부들과의 오찬 약속도 취소했다.

임 특보는 국정원 고위관계자들이 “청와대에 물어보라”며 사실상 자신을 ‘총지휘자’로 지목한 데 대해서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임 특보는 향후 자신에 대한 문책론 등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측근들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배 산은 부총재

2000년 6월 산업은행에서 현대상선 대출에 간여한 박상배(朴相培) 부총재는 30일 사무실을 비워 접촉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근 본보 기자에게 “정치권은 4000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으며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었다.

그는 “계좌추적만 하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데 한 달도 안 걸린다”면서 “4000억원의 행방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은행원이 얘기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4000억원이 북한으로 갔다 하더라도 추적해 밝히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국익에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정몽헌 회장

정몽헌(鄭夢憲) 회장은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7시30분경 서울 성북동 자택을 떠나 8시경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12층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했다. 취재진이 정 회장의 집무실을 연이어 찾았지만 정 회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비서진은 정 회장이 같은 층에 있는 현대아산 사무실로 갔다고 설명하고 현대아산측은 이를 부인하는 등 오전 내내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비서진은 낮12시경 정 회장이 약속이 있어 시내 모처로 떠났다 돌아온다고 설명했고 이후 회장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비서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이날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고 앞으로도 정상 출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엄호성 의원(한나라당)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의 금감위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비밀리에 북한에 송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엄호성 의원은 “현대가 대북송금한 2235억원 외에 운영자금으로 썼다는 1765억원도 구체적인 사용처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돈이 북한의 무기개발이나 구입에 사용됐다면 정황이 드러날 경우 국민적인 공분을 면키 어렵다. 국정조사를 실시해 현대의 대북송금 사실을 당시 정권의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는지, 특히 청와대가 개입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국정원이 어떤 식으로 관여됐는지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 자금세탁 및 전달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현대 해외지사의 ‘환치기’를 통해 달러벌이를 하는 북한 해외사업체로 돈이 갔는지, 아니면 국정원 계좌를 이용한 ‘돈세탁’ 절차를 거쳤는지를 꼭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 발언록▼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2002년 9월27일)=김보현 국정원 3차장과 엄낙용 전 산은총재가 현대상선 대출건과 관련해 만났다는 엄호성 의원의 주장은 금시초문이다. 현대와 산업은행, 북한간의 문제가 아니겠느냐.

▽박선숙 대통령 공보수석(2002년 9월27일)=한나라당이 선거용 정치공세 차원에서 대통령 흠집내기를 일삼는 것을 규탄 한다. 근거가 없고 앞뒤가 안 맞는 왜곡선동에 대해 한나라당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2002년 10월1일)=지금 한반도 정세가 급류를 타고 있어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은 대북 비밀지원설 등 정략적 공세에만 빠져 있다. 한나라당은 내가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직전 싱가포르에 갔다며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이유처럼 얘기하지만 당시 북측은 평양 순안공항 등의 아스팔트가 굳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발표해 그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박지원 실장(2002년 10월5일)=남북정상회담 대가나 남북문제를 고리로 해서 북한에 1달러도 준 사실이 없다. 현금으로 정상회담의 대가를 지원한 적이 없으며, 정부를 대신해 민간이나 민간기업이 지원한 적도 없다.

▽박지원 실장(2003년 1월27일)=청와대와는 무관한 일이다. 경제 관련 흐름은 나는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른다.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전 대통령 비서실장(2002년 10월6일)=대통령비서실장 1년10개월을 하는 동안 은행 대출건과 관련해 어떤 은행에도 압력을 넣은 적이 없다. 내 양심과 인격을 걸고 그런 사실이 없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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