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고건은 이런 사람…주변사람들이 본 업무스타일

  • 입력 2003년 1월 21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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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高建) 국무총리 내정자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합리적이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노무현(盧武鉉) 당선자가 ‘안정총리’로 그를 낙점한 데도 이런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동네 목욕탕을 즐겨 찾고 지하철을 수시로 애용하며 부하 직원들과 허름한 술집에서 값싼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서민적 풍모’는 노 당선자와 통하는 점이 많다.

그러나 일 처리를 하면서 지나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때문에 ‘돌파력’이 없고 ‘행정마인드’는 철저하지만 ‘경영마인드’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병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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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고 합리적인 리더십=91년 한보그룹의 대규모 로비로 발단된 수서 아파트 사건은 그의 깔끔한 처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꼽힌다. 당시 관선 서울시장이던 그는 수서 부지 고도제한을 해제해 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하라는 청와대 국회쪽의 압력을 끝까지 뿌리쳤다가 ‘괘씸죄’로 옷을 벗었다.

당시 청와대 수석들까지 나서 허가를 종용했으나 그는 “이번에 허가하면 비슷한 다른 곳들도 허가를 해줘야하기 때문에 난개발이 큰 문제가 된다”고 계속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전 서울시 고위 공무원 C씨는 “당시 청와대는 담당국장을 문책하라고 압력을 가했으나 고 시장이 이를 거부해 결국 물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98년 민선 시장이 됐을 때 정기인사를 3개월이나 미루면서 나름대로 직원들에 대한 종합 평가를 한 뒤 인사를 단행했다. 또 월드컵 당시 한강에 축구공 모양의 대형 풍선 6,7개를 띄워 조명을 넣어 ‘웰컴 투 서울’같은 조형물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실무진이 검토 후 난색을 표명하자 그 자리에서 백지화시킨 것 등은 그의 신중하고 합리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한편 김영삼(金泳三) 정권 말기 ‘한보게이트’가 터지자 그는 총리 제안을 받았으나 3번 고사했다. 그러나 YS가 “나라를 위해 일해달라. 그리고 대안이 없다”고 거듭 요청하자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을 찾아보고 그래도 마땅한 사람이 없으며 하겠다”고 대답한 것도 정통 행정관료로서의 신중한 처신을 보여준 대목이다.

▽지나친 몸조심=일각에서는 “너무 조심하기 때문에 대과도 없지만 뚜렷한 성과도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비판론자들이 내세우는 사례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사업.

당초 추모공원은 강서구에 건설하기로 했다가 강서구민이 반대하자 서초구로 장소를 옮겼고 또 다시 서초구민들이 반대하자 미적미적하던 끝에 결국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데도 착공도 하지 못한 채 퇴임했다는 비판이다.

서울시 의회 관계자는 “대중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버스노선 입찰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잘 안됐다. 지하철 운영 민간 위탁도 흐지부지됐으며 교통방송 공사화도 유야무야되는 등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신중일변도여서 되는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민적 풍모=일선 공무원들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스타일이어서 부하 직원들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얻어왔다.

그는 총리나 서울시장 시절에도 퇴근 이후 야근 부서로 전화를 걸어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소주나 맥주를 사주며 애로사항을 듣기를 즐겼다. 총리 내정 확인을 위해 동숭동 자택을 방문한 기자들을 피하다가도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겠다”고 버티면 결국 “추운데 안가고 뭐하느냐. 할 말은 없지만 소주나 한잔하고 가라”며 근처 허름한 술집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과도 격의없이 지내는 스타일. 시장 재직 시절 비서 1명만 달랑 데리고 지하철을 수시로 애용하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고, 식당에서 처음 보는 시민들에게 스스럼없이 술잔을 건네곤 했다. 카페에서 젊은 대학생들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할 때면 소주 대신 칵테일 ‘마가리타’를 마시기도 한다.

서울시 한 공무원은 “언젠가 보육원 아동이나 소년소녀가장과 후원가정을 이어주는 ‘이모-외삼촌 결연맺기’ 행사가 열린 적이 있는데 아이들과 후원가정, 공무원들이 함께 ‘의자 뺏기 놀이’를 했다. 고 시장도 이 게임에 참여해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 진짜로 게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그의 친화력을 높이 평가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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