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1억달러 횡령 대북지원금 전용 의혹”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8시 10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가 2000년 5월 영국 현지 반도체공장 매각대금 중 1억달러(약 1259억7000만원)를 중동의 한 유령회사로 빼돌려 대북 뒷거래 등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은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 “현대전자는 2000년 5월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영국 현지 반도체공장인 ‘현대전자스코틀랜드(HES)’를 모토로라사에 1억6200만달러에 팔아 이중 1억달러를 중동의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가공회사)인 ‘현대알카파지(HAKC)’에 송금해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어 “현대알카파지는 현대건설의 해외 자회사라고 현대전자 연결감사보고서에 기록돼 있으나 실제 현대건설의 감사보고서에는 자회사로 명시되지도 않은 유령회사”라며 “이 회사는 송금 직전 설립됐다가 송금 후 실체가 바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주장의 근거로 회계법인의 단기대여금 처리내용을 담은 2000년과 2001년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의 연결 감사보고서를 각각 제시했다. 그는 또 “당시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은 영국 지사장에게 ‘거래내용을 묻지 말고 송금하라’고 지시했으나 당시 지사장이 불법이라고 반발하자 정 회장이 직접 실무 경리직원에게 지시해 송금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현대전자가 2001년에 갚아야 할 회사채와 미지급금 등이 5조6000억원이나 되는 등 재정상태가 아주 나빴는데도 해외 공장 매각대금을 다른 곳에 빌려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돈은 대북 지원자금으로 쓰였거나 아니면 현대그룹 계열사에 불법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검찰과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감사원 등이 이 문제를 파헤쳐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현대전자의 스코틀랜드 현지법인을 감사했던 영국의 회계법인은 “현대 측은 ‘이 돈을 알카파지사(社)에 빌려 주었고 앞으로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손실로 처리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31일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대전자 본사와 자회사인 현대 스코틀랜드 법인의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영국 현지 회계법인의 의견을 받아 재무제표에 인용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시 매각대금 1억6200만달러 가운데 4400만달러는 공장건설 대금으로 현대건설에 지급됐으며 나머지 금액은 유럽 현지법인에서 운영자금으로 썼다”면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일축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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