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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4일 2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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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그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대아산 김윤규(金潤圭) 사장이 찾아와서 ‘왜 계약을 그렇게 했느냐’고 묻자, ‘장전항을 조차(租借)할 수 있다’고 자신해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김 사장은 끝내 계약서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북한이 장전항에 있는 군사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며 “장전항은 북한이 간첩선을 띄우는 곳으로 군사시설이 이전되면 안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금강산관광을 허용했다”고 금강산관광 협상과정의 비화를 공개했다.
이 전 원장은 “98년 국정원장 재직시 현대가 대북 사업을 하면서 수백만달러의 뒷돈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내가 ‘상궤를 넘는 뒷돈 제공은 안 된다’고 엄중 경고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대우 등 다른 기업들도 북한과 거래를 할 때 뒷돈을 줬고,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도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모 방송사가 농구팀을 북한에 보낼 때도 뒷돈을 제공했고, 정주영(鄭周永)씨가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것도 뒷거래”라며 “당시에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일정부분 관행이어서 도를 넘지 않도록 제재를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통상적으로 북한에 지급되던 리베이트와 대북 4000억원 지원설은 별개”라며 “4000억원이 뒷거래로 제공됐다는 얘기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원장은 24일 발행된 31일자 주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 등 대기업들의 대북 뒷거래 관행을 공개했다.
그는 또“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당시 안기부(국정원 전신)가 DJ(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방해공작을 펼쳤다”며 “98년 국정원장 취임 후 방해공작과 관련한 서류들을 확인했고,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원장은 “당시 안기부는 노벨위원회 관계자에게 ‘DJ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식의 정체불명의 투서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전 원장의 발언은 당시 소문으로만 나돌던 안기부의 ‘DJ 노벨상 수상 방해공작’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 전 원장은 또 “97년 대선 당시 안기부 고위직에 있던 Y씨가 최고급 정보를 들고 DJ를 찾아왔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지금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대충 안다”며 임기말 국정원 간부들의 정치권 줄대기 현상을 강력히 비판했다.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