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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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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일본이 17일 50여년에 걸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키로 함으로써 북-일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과 동북아 정세가 급류를 타게 됐다.
이번 회담을 통해 일본은 피랍 일본인 문제와 과거사 청산을, 북한은 경제협력과 국제사회 고립 탈피라는 성과를 각각 얻게 됐다.
일본은 또 미사일 등 군사 안보문제에서도 일부 진전을 이끌어내 독자적인 외교력을 과시하게 됐다.
북한도 양국 교섭의 걸림돌이 돼온 피랍 일본인 문제 등 현안 전반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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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북-일 양국의 수교교섭 진전속도가 예상 외로 빨라지는 한편 지난해 9·11테러 이후 악화됐던 북-미관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피랍 일본인 중 8명의 사망소식이 일본 국내에 의외로 큰 충격을 주고 있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여론 설득 작업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국교를 맺지 않은 적대 국가를 방문한 것은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이래 30여년 만의 일이다.》
▼무기문제▼
북한은 핵 및 미사일 등 안보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측 주장을 대폭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북-미관계 개선의 길을 열었다.
특히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한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또한 북한이 ‘동북아 각국간 상호신뢰를 토대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상호 신뢰구축을 위한 틀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 것은 일본측이 제의한 남북한-미-일-중-러의 6자 협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일본측은 해석하고 있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수용 요구와 관련해 ‘북한은 한반도 핵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관련된 모든 국제합의를 준수하고 관련국과의 대화를 촉진해 문제해결을 꾀한다’는 선에서 합의했다. 핵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은 북-미간 협의로 넘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의 독자적인 방북결정에 대해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부시 대통령은 뉴욕 미일정상회담(12일)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안이한 타협을 하지 말도록 특별히 주문까지 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16일 “북한은 세계 최악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확산국”이라고 밝혀 회담을 앞둔 일본과 북한을 압박했다.
스즈키 노리유키(鈴木典幸) 라디오프레스 이사는 “북한은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라크에 대해 공격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서도 안보 분야의 일본측 제안을 상당부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이 특사 파견 여부 등을 포함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과거청산▼
북-일 양측이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청산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국교정상화 교섭에 착수하게 됨으로써 일본과 북한은 상당한 명분과 실리를 얻게 됐다.
일본으로서는 전후(戰後) 처리에 있어 마지막 매듭을 짓게 됐고 북한으로서는 경제협력이라는 실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95년 아시아 각국에 발표했던 '무라야마 담화'를 토대로 북한에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하고 보상문제는 65년 한국 국교정상화 때처럼 경제협력을 통해 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기존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서 한발 물러서서 일본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극심한 경제난을 해소하고 7월에 착수한 각종 경제개혁 조치들을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이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양측은 국교정상화 이후 적절한 시기에 무상자금협력과 저금리 장기차관 제공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 경제협력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민간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협력은행을 통한 융자나 신용 공여 등도 하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논의할 경제협력의 자금 규모. 65년 한일 수교 때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경제협력 자금은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0억달러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북한은 이와 관련, 130억 달러 이상을 일본에 비공식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다.
고마키 데루오(小牧輝夫) 고쿠시칸대학 교수는 "5억달러에 달러 기준 인플레율을 적용할 경우 23억달러, 일본 엔화를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60억달러 가량으로 추산된다"며 "그러나 90년 가네마루 신(金丸信) 방북단이 80억달러를 제시한 적이 있는 만큼 실제 금액은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승전국들이 대일청구권을 포기했지만 한국 중국 등은 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아 일본이 이들 국가들과 개별 배상협정을 체결하는 식으로 풀었다.
▼납치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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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측이 일본인 납치의혹을 제기하고 안부확인을 요구한 11명 중 10명(생존 4명, 사망 6명)과 이에 포함되지 않은 3명(생존 1명 사망 2명)의 안부를 확인해 준 것은 당초 일본이 예상했던 것보다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정식으로 일본인 납치사건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것은 피랍 일본인 문제를 매듭짓고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급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피랍 의혹 문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해결의지를 보인 일본측 최대 현안. 고이즈미 총리는 방북 이전부터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이번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자체가 납치문제의 큰 진전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면서도 피랍자 중 일부의 안부만 확인해 줄 것으로 알려지자 피랍 일본인 가족들이 “피해자 전원이 안부가 확인되지 않는 한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에 반대한다”는 등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북한측 발표에 따르면 피랍 의혹 일본인 11명 중 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으로 알려졌던 다구치 야에코(한국명 이은혜), 유럽 유학 중 실종됐던 아리모토 게이코, 중학교 1학년생으로 실종됐던 요코타 메구미 등 6명이 사망했다. 또 4명은 생존이 확인됐으나 1명은 북한 입국 여부가 불확실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북한측이 밝혔다. 이밖에도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일본인 3명중 1명이 생존하고 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일단 북-일 관계가 숨통이 트이게 됐지만 8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반발하고 있는 일본 내 여론을 어떻게 누그러뜨릴지가 앞으로 남은 숙제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발표를 듣자마자 “8명이나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며 “북한은 이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정확히 밝혀야 하며 정부는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 북-일 정상회담 현안 | ||
| 현안 | 기존 북한 주장 | 기존 일본 주장 |
| 식민지배 사죄 | 식민지배로 인한 인적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공식 사죄 필요 | ‘아시아 각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95년 무라야마 담화 수준 사과 |
| 과거사 배상 | 식민지 지배하의 재산청구권과 배상청구권을 주장 | 교전상태 아니므로 배상불가. 일한 경제협력방식 바람직 |
| 일본인 납치 | 행방불명자 조사는 적십자에서 추진중. 정부 해당기관도 가능한 조치 취하고 있다 | 구체적 성과가 없으면 국민 납득 어렵다. 정치적 차원에서 해결을 위해 성의를 다해달라 |
| 괴선박 | 근거 없이 우리와 관련짓는 것은 중대한 모독행위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 일본 근해에 출몰하는 공작선은 안전보장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해야 |
| 요도호 범인 귀국 | 그들의 귀국은 그들 자신이 결정할 문제다 | 중요범죄 용의자다. 신속하게 인도하라 |
| 미사일 개발 | 자주권의 문제.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군사 위협을 주지 않는 한 우려할 필요는 없다 | 미사일 발사실험 중단 지속하라. 미사일 관련기술의 개발, 배치, 수출을 중단하라 |
| 핵 개발 | 북-미협의 합의이행을 위해 노력. 향후문제는 미국과 논의 |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의 조기실시 필요 |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