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정상회담 국내외 전문가 5인 분석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59분


허문영 연구원
허문영 연구원
▼한국…허문영 통일연구원 연구원▼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실 선임연구위원(현)△성균관대 정치학 석박사△대전대 겸임교수△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KBS 해설위원

이번 북-일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는 그간 북한외교의 변화상에서 살펴봐야 한다.

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은 ‘고슴도치 외교’로 일관했다. 즉 먼저 공격은 하지 않되 외부의 위협에 대해선 철저히 웅크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98년 9월 출범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는 ‘비둘기 외교’로 선회한 뒤 ‘강성대국론’을 주창하며 정치사상 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3대 목표를 추진해왔다.

북한은 특히 이 시기부터 외국자본과 기술도입을 통한 경제강국 건설에 주력했고 그 결과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 안착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2001년부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북강경노선을 강조하고 북한 미사일 개발문제 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치른 뒤 다음 목표로 북한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일 정상의 만남은 한반도의 정세불안을 막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안착하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경제가 회생기회를 잡고 양측의 다양한 경제외교적 관계증진이 이뤄지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정세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다양한 협력사업을 통해 대북 지원을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거쳐 북한은 대미 관계개선을 위해 국제무대에 더욱 적극적이고 안정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또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무기한 유보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긍정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로선 한반도 문제가 지나치게 국제문제화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에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영향력이 더 확대되면서 한미일 3국간의 정책조율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3국간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뛰어들 경우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이 유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한미일 3국간의 정책적 공조와 중-러와의 정책적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며 특히 미국이 자신들이 배제된 채 한반도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

▼미국…케네스 퀴노네스 하버드대 박사▼

△1943년생△하버드대 박사 (역사 동아시아언어)△트리니티대 조교수△주한미국대사관 정무담당관△국무부 한국과 분석관(10여 차례 방북)△국제구호단체 머시코의 동북아프로젝트 담당 국장△미국 亞太연구 센터 한반도 프로그램 담당 이사(현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짧은 시간에 거둔 놀라운 외교적 성과는 일본인 대부분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한편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 전망을 밝게 한다. 그는 또 한반도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일본을 선두에 서게 했다. 그는 동시에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해 양국의 이견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이 미사일발사유예조치를 계속 연장키로 한 것은 일본의 국익을 충족시킨다. 자세한 합의 내용은 분명치 않지만 북한의 제스처는 명확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북-일간의 적대관계는 완화되고 동북아의 긴장도 감소하게 됐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북-일 정상회담은 시작일 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과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방북한 것이지 구체적인 현안에 관해 협상을 벌이기 위해 평양에 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복잡한 현안들을 앞으로 풀어야 하지만 정상회담은 일단 이 같은 문제의 해결 전망을 밝게 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관해 강온파로 분열돼 있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실험발사 유예 연장에 대해 만족하지는 않지만 이를 환영하기는 할 것이다. 미국은 빠르면 이달 안에 제임스 켈리 국무부차관보 등을 북한에 특사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처럼 요란하게 대결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도 외교로 북한과의 문제를 풀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북한이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게 행동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진지하게 포용할 것임을 보여주도록 김 위원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또 북한이 갈망하는 경제지원 등을 얻기 위해선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수사(修辭)를 자제하고,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를 강조함으로써 이 같은 과정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아시아의 우방인 일본이 북한을 다루는 과정에서 세운 전례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전서 교수

▼중국…한전서 사회과학원 교수▼

△중국 인민대학 계획통계과 졸업△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 태평양연구소 동북아 연 구실장△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교수△일본 국제 동아시아연구센터 객원교수△(현)중국 사회과학원 한 반도문제 연구중심 주임 겸 중국 일본학회 상무이사

북-일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의미있는 발걸음의 하나로 평가받을 것이다.

과거 한-소 및 한-중 수교로 냉전구도의 한 축이 무너졌다면 남북 정상회담과 이번 북-일 정상회담은 또다른 한 축을 녹이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탈냉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종착역을 남겨두고 있으나 이번 회담이 가속 페달 역할을 할 것만은 분명하다.

양측은 과거사 청산과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국교 정상화를 위한 큰 틀을 마련했다. 특히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고 미사일 발사를 계속 유예할 뜻을 밝힘으로써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당초 이번 회담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양측은 북-일 관계의 개선은 물론 한반도 긴장 완화와 동북아 지역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는 양측 모두 대결과 억압보다는 대화와 협상이란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향적 자세로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가 다른 목적을 갖고 회담을 추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측은 북한 군사위협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해소하고 새로운 외교 공간의 개척을 통해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려 한 반면, 북한측은 대일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난 타개와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상호 목적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양측은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냈다. 반세기 이상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양측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시도는 동북아는 물론 국제 평화에도 도움이 되며 시대적 흐름에도 부합한다. 비록 미국이 회담 내용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이같은 흐름을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일 관계는 역사적 특수성을 갖고 있고 미국이란 큰 변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어려운 첫 걸음을 떼놓은 양측이 대화를 이어간다면 앞날을 비관할 이유는 없다.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일본…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1945년 군마현 출생△게이오대 박사 한반도 정치, 국제정치 전공△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 연구원△저서 ‘조선전쟁’ 등 다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중 8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은 일본 국민에게는 충격적이다. 17일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측의 양보로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의 소식이 확인됐지만 이 발표는 오히려 일본 국민의 대(對) 북한 감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은 회담에서 합의된 일정대로 진행되겠지만 일본내의 격앙된 여론을 감안할 때 국교정상화 협상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회담은 전체적으로 잘 됐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일정한 성과를 나눠 가졌다. 북-일 관계의 개선은 북-미 대화를 진전시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한 이번 회담을 통해 오랜 현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를 사실상 해결하면서 북한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김 위원장도 일본과의 수교 협상 재개를 통해 미국의 공격 위협에서 한발 비켜 서는 효과와 함께 경제지원 약속이라는 과실을 챙겼다.

하지만 이날 회담의 결과는 앞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북한의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납치 문제라는 핵심 협상카드를 써버림으로써 대일(對日) 협상의 중요한 지렛대 하나를 잃은 셈이 됐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비극적으로’ 정리됨에 따라 일본 내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에 제동을 걸거나 대규모 경제지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될 소지가 있다.

북한이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대화에 적극 나선 것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인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안에 미국 일본과의 관계에서 진전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현실 인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일 협상이 진전돼 일본의 경제협력 자금이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사업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에도 기여해 ‘일본인들은 한반도 통일에 반대한다’는 선입관을 바로잡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론초프 연구원

▼러시아…보론초프 동방학연구소 연구원▼

△모스크바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졸△김일성대 유학△동방학연구소 정치학박사△한국외국어대 국제대학원 방문교수△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 2등서기관△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

이번 북-일 정상회담은 공동선언에 나타난 긍정적 성과를 별개로 하고도 회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한반도 주변 정세의 긍정적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으로 최근 2년 새 한반도 주변의 이른바 ‘4강’ 중 미국을 제외한 일 중 러 세 나라의 정상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다.

물론 앞으로 북한과 일본이 완전한 관계정상화(수교)까지 가기에는 아직 장애가 많다. 그러나 양측이 실무자급 대화가 난관에 부닥치자 정상회담이라는 돌파구를 찾은 것을 보면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 한-러 수교 과정에서도 관계 진전이 한번 탄력을 받으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의 열쇠는 주변국 중 북한과의 대화에 가장 소극적인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정세 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불안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동북아의 안정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다.

한반도에 인접해 있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 때문에 한반도의 안정을 희망하고 있다. 반면 주변 4강 중 미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멀어 상대적으로 이런 불안감이 적다.

미국은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스스로는 북-미 대화에 많은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일본도 북-일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미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까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데도 미국은 이런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국제적 고립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이제는 미국이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은 북한이 포함된 이른바 ‘악의 축’ 국가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악의 축에 대항하는 기본 구도는 한 미 일 공조체제이며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앞두고 이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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