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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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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견은 단기적으로는 8·8 재·보선을 겨냥해 최근 하향곡선을 그려온 지지도를 끌어올리려는 카드지만, 장기적으로는 부패청산의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고 ‘탈(脫)DJ’ 행보를 본격화함으로써 이미지 제고와 한나라당 압박에 나서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제안에 청와대와 한나라당 모두가 부정적이어서 이날 회견이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왜 지금인가▼
노 후보 측은 이제 시간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대선가도의 갈림길이 될 8·8 재·보선이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실제 노 후보 진영은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후보직까지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노 후보의 처지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내 비주류들은 이미 재·보선 이후를 겨냥, 세력화의 수순을 밟고 있고 지방선거를 참패로 이끌었던 ‘홍(弘)3 게이트’의 여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 여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해교전 사태의 불똥까지 튀었다. 또 YS 방문과 ‘튀는 언동’ 등이 겹쳐 한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를 더블스코어 차로 앞섰던 노 후보의 지지율은 월드컵 열기를 등에 업은 정몽준(鄭夢準) 의원으로부터 2위자리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민주당의 보수적 분위기와 자신의 개혁 성향 사이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던 노 후보는 자신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그 첫 번째 작품이 ‘탈DJ’와 ‘정국 주도권 확보’를 동시에 겨냥한 부패청산 프로그램 제시로 나타났다. 이는 향후 노 후보의 행보가 ‘개혁’쪽으로 선회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노 후보가 개혁신당 창당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국중립내각▼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은 형편이다. 청와대도 한나라당도 모두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의 경우는 노 후보측과 전혀 사전교감이 없었기 때문에 당혹감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 노 후보의 정동채(鄭東采)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결정한 3일 밤에야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기자회견 계획을 통보했고, 4일 아침 청와대를 방문, 박 실장에게 직접 노 후보의 기자회견문을 전달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후보가) ‘6·29 선언’ 같은 것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정치 안 하겠다는 게 대통령이 탈당한 뜻”이라고 말해 노 후보의 회견 내용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한나라당이 중립내각 구성과 각료 추천권 행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는 각료 추천이 정치적인 계산을 해볼 때 현실적인 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각료추천권을 행사할 경우 현 정권의 비판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대선에서의 가장 큰 무기인 ‘DJ 정권 심판’이라는 무기를 스스로 차버리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노 후보의 제안 자체가 현실적인 성사 가능성보다는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공세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 여기다 서로간의 계산법도 제각각이어서 접점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회담▼
노무현 후보가 대선후보 회담을 제안한 배경은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DJ-이회창 대립구도를 노무현-이회창 간의 맞대결구도로 바꾸어야만 국면전환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노 후보측은 지방선거 패배의 주요인도 ‘DJ 심판론’이 크게 먹혔기 때문이라고 보고 ‘탈DJ’의 최종목표를 노-이 대결구도 정착에 두고 있다.
노 후보측은 양자 대결구도만 이뤄지면 ‘서민’‘개혁’의 이미지를 앞세워 다시 지지율 반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노 후보측의 계산을 꿰뚫어 보고 있는 한나라당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노 후보의 회견내용은 다분히 정략적인 ‘제안을 위한 제안’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