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길재/서해도발 냉철한 대처를

  • 입력 2002년 6월 30일 18시 29분


미국은 북한을 ‘로그 스테이트(rogue state)’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깡패 국가’에 해당된다. 북한의 이번 서해 도발은 북한이 로그 스테이트임을 만천하에 입증시킨 사건이며 국제사회의 양식에 비춰볼 때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상관없이 규탄받아 마땅한 사건이다. 우리측 영해를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퇴거를 요구하는 우리 함정에 경고 한번 하지 않고, 정조준하여 포격한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다.

▼´연평해전 보복´가능성 커▼

남북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른바 ‘민족 공조’의 틀을 구축했다. 남측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압박할 때도 남북 화해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미국에 협력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 덕분에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겼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했다. 북한 상선이 우리 측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했을 때도 정부는 평화적인 조치로 대응했다. 더구나 1999년 문제의 서해상에서 연평해전이 벌어진 이후 북한 측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이 계속됐으나 가급적 평화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급기야 살상행위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북한의 선제공격은 우발적이지 않다. 조업 중인 북한 어선들을 뒤로 한 채 남진한 것도 그렇고, 사전 경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습한 것도 그렇다. 그러면 무슨 의도에서 이 같은 일을 벌였을까. 추론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생각해 보자. 크게 나눠 보면 북한 내부의 문제와 관련됐다는 것과 외부 세계에 대해 뭔가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 등 두 가지로 대별된다.

북한 내부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첫째, 김정일의 재가없이 북한 군부 강경세력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저지른 소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는 가능성이 없다. 북한군은 당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선군정치’라는 구호는 군의 사업 방식을 앞세운다는 명분 하에 군을 김정일의 주위로 묶으려는 것이지, 군을 위에 놓겠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북한 군부는 김정일의 사람들에 의해 확실하게 장악되어 있다. 김정일의 재가없는 군사행동은 불가능하다.

둘째, 북한 내 강경파와 온건파간의 충성경쟁에서 비어져 나온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정상회담을 포함해 대남 사업을 주도한 온건파가 최근 남북관계 경색으로 입지가 약화되자 강경파가 온건파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며 이는 김정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 체제의 중앙집권화를 무시하는 해석이다.

셋째, 1999년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서해 현지 해군이 일종의 ‘영웅주의적 보복 공격’을 감행한 것이며 이는 북한의 ‘강성대국’ 담론과 맞아떨어져 체제 일체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고 군의 자신감 내지 단결을 조장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김정일이 곧바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묵인 내지 방조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한미 양국에 시위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다. 한반도 상황이 전혀 평화롭지 않으며, 이를 좌우할 수 있는 행위자는 여전히 북한이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남한의 위상이 높아지고, 마치 한반도 평화를 남한이 주도한 듯한 인상이 심어지고 있다는 판단 하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충격요법 식으로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가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고 평가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수령’ 자신이 공개적으로 ‘출연’했음에도 남한의 경제 지원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킴으로써 한미 양국에 북한이 ‘제공하는’ 평화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대외적인 의도로는 가장 그럴 듯한 해석이다.

▼안보문제 확고한 태도 필요▼

남북관계는 구조적 차원에서 볼 때 쉽게 변화되기어렵다. 적대성과 경쟁을 축으로 하는 남북관계는 정상회담이 열려도 쉽게 개선되지 않으며, 역으로 총성이 울려도 급격하게 악화되지 않는 비탄력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대응 자세다. 비안보 분야에서는 신축적인 대응도 가능하지만, 안보 사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확고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체적인 대북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유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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