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최규선 손바닥 안' 인가

  • 입력 2002년 5월 8일 18시 39분


최규선(崔圭善)씨 녹음테이프에 대한 청와대 및 여권의 반응은 최씨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청와대와 이 정권이 제 정신이냐는 것이다. 최씨를 ‘믿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치더라도 그가 녹음테이프에 남긴 ‘기막힌 말들’이 전혀 근거 없다고 할 수 없다면 정작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비치는 것은 청와대와 정권 측이다. ‘아니다, 우리는 제 정신이다’라고 하려면 겹겹이 쌓인 의혹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의혹의 초점은 청와대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최씨는 육성 녹음에서 지난달 14일 해외로 도피한 최성규(崔成奎)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 도피 전 대통령정무기획비서관, 2명의 국가정보원 직원 등과 수차례 회의를 갖고 자신을 해외로 밀항시키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해 왔다고 한다. “최규선이 검찰에 출두하면 그의 말 한마디에 우리 정권이 잘못되고 대통령이 하야(下野)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부산에서 밀항시켜 밖으로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씨에게 밀항 결정을 전했다는 최 전 과장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외도피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최씨의 주장을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려면 최 전 과장이 어떻게 그렇듯 신출귀몰하게 달아날 수 있었는지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정적 증인을 ‘정권적 차원에서 빼돌렸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는 터에 청와대 측이 아무리 최씨더러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한들 오히려 ‘대통령의 하야’를 걱정해야 할 비리는 또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의혹만 부풀릴 뿐이다.

최씨는 지난달 14일 검찰 출두를 앞두고 대통령민정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을 (홍걸씨에게) 건넸는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니 검찰 소환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틀 후인 16일 검찰에 출두했다. 최씨는 또 최 전 과장이 함께 달아나자면서 “네가 들어가면 나라가 뒤집어진다. 검찰도 지금 시간을 벌고 있는 거다. 청와대도 난리다”라고 했다고 녹음했다. 이쯤 되면 청와대 측이 최씨와 얽힌 홍걸씨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최씨를 해외로 내보내려 했다가 안 되니까 입을 막으려 애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의 얼개가 잡히는 셈이다.

우리는 최씨의 녹음테이프 내용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만에 하나 전부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지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수치요, 국민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최씨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실세들과 어울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거듭 말하지만 청와대가 정말 ‘최규선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는지 아닌지, 그 진상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더 이상의 거짓은 용서될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