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수석 보물사업 해명 하루도 안돼 뒤바꿔

  • 입력 2002년 1월 26일 01시 12분


이기호(李起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25일 자신이 이형택(李亨澤)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엄익준(嚴翼駿·사망) 전 국정원 2차장을 연결시켜 줬다고 시인함으로써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청와대 핵심 실세의 ‘이용호 게이트’ 관련설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당초 이형택씨의 보물 발굴사업 관련설을 완강히 부인하던 이 수석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계속 확산돼 가자 이날 저녁 뒤늦게 해명자료를 내고 엄 전 차장에게 이형택씨를 소개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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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수석과의 일문일답.

-이형택씨를 언제 만났나.

“99년 12월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에도 이씨를 만난 적이 있나.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다.”

-이씨가 12월 초 찾아와 뭐라고 했나.

“보물이 매장돼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이를 알아볼 길이 없겠느냐고 문의해 왔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처음에는 황당하게 생각했다. 소문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 같은 데서 혹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씨가 국정원에 연락을 좀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국정원에 문의했나.

“엄익준 전 차장에게 보물매장 정보에 대해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엄 전 차장은 정보 확인차원에서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후 2000년 1월 말인가 2월 초인가 엄 전 차장으로부터 ‘확인결과 사실이 아니어서 이형택씨에게 연락해 줬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무수석도 아닌데 국정원에 정보확인 요청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물이 실제로 매장돼 있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순수한 뜻에서 국정원에 사실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일 뿐 청탁이나 압력 차원은 아니었다. 당시는 ‘이용호 주가조작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이다.”

이 수석은 “이 같은 사실 외에 기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주장했으나 하루도 안돼 자신의 발언 내용을 뒤집는 등 해명 내용과 과정이 석연치 않아 오히려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수석은 이날 낮까지만 해도 “나는 엄 전 차장을 잘 모른다. 국정원장에게 전화했다면 또 모르겠다. 내가 왜 엄 전 차장에게 전화를 하겠나”라며 관련설을 강력 부인했었다. 기자들이 “99년 말 청와대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하자 “그런 적 없다. 이형택씨와 보물 문제로 만난 적이 없다. 누군가 모함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펄쩍 뛰기도 했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수석이 하루도 안돼 드러날 사실을 굳이 감추려 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 수석이 이용호 게이트 및 이형택씨 보물 발굴 사업과 관련해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별검사 팀 주변에서는 이 수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수석이 엄 전 차장뿐만 아니라 해양수산부, 해군 등 관련부처에도 부탁을 하는 등 광범위하게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실정이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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