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JP와 공조 사실상 깨졌다"

  • 입력 2001년 9월 3일 17시 37분


“들어오면서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대통령이 속이 별로 안 좋을 텐데 용케도 여기 나왔구나’하는 것 같은데 나는 괜찮다. 가벼운 마음이다.”

3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 날’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은 진작부터 예상됐던 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원칙에서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표정이나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이날 오후 임 장관 해임안 가결 직후 청와대의 분위기는 결연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특히 김 대통령이 4일 일정을 취소토록 한 것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였다.

당초 청와대는 임 장관 해임안이 가결되더라도 DJP 공조 파기를 먼저 선언한다거나 자민련 출신 각료들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신중하고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김 대통령의 일정 취소는 중대한 방향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대대적인 당정개편설이 부상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함께 김 대통령이 정국운영 기조의 획기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직접 국민을 상대로 대북(對北) 햇볕정책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영(朴晙瑩)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이 “민족문제에 대해 공조하지 못하는데 다른 국정에 대한 공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사실상 DJP공조의 결렬을 선언한 것도 김 대통령의 비상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수석비서관은 “이번 국회의 결정은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로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는 김 대통령의 분노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김 대통령의 한 측근은 “김 대통령은 수없이 벼랑 끝에 서 본 경험이 있고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왔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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