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민단체 32인 성명 "극단적 대립상황에 위기 느껴"

  • 입력 2001년 8월 2일 22시 59분


2일 발표된 ‘32인 공동성명’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원로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명서 초안은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徐京錫) 목사 등 8, 9명이 중심이 돼 지난달 하순에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서 목사는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사회가 극한적 대립상황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초안이 나온 이후 각계 원로 60여명에게 발송했으며 많은 분들이 이름을 올리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서 목사는 “그동안 의견 조정과정에서도 견해 차이는 물론 표현 하나에도 다른 의견들이 많아 세무조사 이후 분열된 사회상을 절감했으나 15차례의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합의점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사회 원로들은 ‘언론개혁은 숙원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형평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로 사회 전체가 보-혁 갈등으로 양극화하는 극단적 대립양상을 우려했다.

이석연(李石淵) 경실련 사무총장은 “정부는 23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해 모두 탈세혐의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6개 언론사만 검찰에 고발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여기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해 정부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요즘처럼 시민단체 대표로서 부끄러움과 갈등을 느낀 적이 없었다”며 “정의와 형평을 기본으로 하는 법조인들마저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언론개혁은 타율이 아니라 자율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먼저 한발짝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손봉호(孫鳳鎬) 서울대교수는 “한쪽만 옳고 다른 목소리는 그르다고 적대시하는 풍토는 옳지 못하다”며 “현재의 극단적 대립상황을 보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송월주(宋月珠) 스님은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적대시해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개탄했다.

<허문명·박민혁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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