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결 이모저모]"강한 여당이 믿을사람만 투표시키다니"

  • 입력 2001년 5월 1일 01시 45분


30일 개혁법안과 국무총리 및 행정자치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는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99명이 해임건의안 투표에 불참, 욕설과 몸싸움 끝에 결국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표결 중단〓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와 이근식(李根植)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은 오후 10시경 일단 순조롭게 시작됐다. 의원들은 차례로 명패와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에 임해 오랜만에 여야 간에 정상적인 표 대결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투표가 일단락된 뒤 투표 인원을 파악해 보니 민주당 의원 78명과 자민련 의원 20명 전원, 민국당 1명 등 모두 99명이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비겁하다” “강한 여당이라더니 믿을 사람만 투표를 시키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다. 이들은 또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 석 앞으로 몰려가 “투표하지 않은 의원들은 이름을 불러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백승홍(白承弘) 의원은 한나라당 차원에서 파악한 투표 불참 의원 명단을 낭독하려다 저지당하기도 했다.

▽여야 대치〓이에 이 의장은 “투표하지 않는다고 호명했던 전례가 없다. 그런 관례를 남기면 안된다. 기권할 자유도 있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류했다. 이 의장은 또 “투표 불참자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국민이 다 안다. 의장이 강제로 끌고 가서 투표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본인들도 심경이 착잡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결국 오후 10시43분경 투표 종결을 선언하고 개표를 지시했다. 김무성(金武星) 의원 등 한나라당 부총무들이 의사봉을 뺏으려고 하자 자민련 일부 의원들이 저지하는 등 몸싸움 과정에서 투표함이 쓰러지기도 했다. 끝내 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본회의 산회 후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원내총무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찾아가 인사했다. 김 명예총재와 이 총리는 밝은 표정으로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한나라당 퇴장〓본회의 파행 상태가 계속되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총재단 회의를 열어 여당을 성토한 뒤 퇴장 방침을 결정했다. 이 총재는 회의 후 “여당에서 협조하면 금방 끝날 텐데…”라며 혀를 찼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이 상황까지 왔으면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는 끝난 것 아니냐. 100명 가까운 의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니 말도 안된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주요 대권 주자라는 사람도 그렇고, 386 의원들은 어디에 숨었나. 한국노총은 데모를 하고 있는데 민주당의 노동계 출신 의원들은 뭐하고 있었느냐”고 비난했다.

정창화(鄭昌和) 원내총무는 오후 11시45분경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육성으로 “오늘 50년 국회사에 조종(弔鐘)이 울렸다.우리 당은 개혁법안 투표에 응했으나 여당은 해임건의안 투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말한 뒤 본회의장을 나가 의원총회를 열었다.

오후 11시50분 이 의장은 “더 이상 개표를 진행하기 어렵다. 의장으로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인권법안 처리〓이에 앞서 실시된 인권법 표결에서는 여 3당(137명) 한나라당(133명) 비교섭단체(3명) 등 여야 의석 비율이 그대로 반영됐다.

이날 표결에는 재적 의원 273명 전원이 참석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졌다.

<송인수·박성원·김정훈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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