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회견 내용·의미]"대야관계 원칙대처" 강조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50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1일 연두회견 기조는 강한 정부론 이었다. 이는 정치안정 없이 경제살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대통령이 정도(正道)와 법치(法治)를 강조한 것은 민주적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한 선을 긋는 한편 집권 후반기 권력누수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날 김대통령의 톤은 취임 후 어느 때보다 강했고, 표정도 단호했다. 국정운영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야관계▼

김대통령이 “불행하게도 지난 3년 동안 야당의 협력을 못받은 것은 물론이고 심한 괴로움을 당했다”고 유감을 표시한 것은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야당의 협력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또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수사 등과 관련한 야당의 반발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원칙적인 대처를 강조한 것은 더 이상 야당의 정치공세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야당에 대한 김대통령의 격앙된 감정은 ‘의원 꿔주기’ 사태와 관련해 “과거 정권에서 야당의원 빼가기를 했던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비판할 입장이 못된다”고 한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대통령의 야당 관련 발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야당에 대한 피해 의식을 넘어 이제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공세적인 자세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과거 ‘DJ 비자금’ 의혹을 다시 제기하면서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김대통령이 “나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은 일이 없다”며 일축한 것도 뒤집어보면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등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물론 김대통령은 “야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잘 지내고 싶다”며 대타협의 여지를 남겨 두기는 했으나 이날 회견의 ‘싸늘한 분위기’로 미뤄볼 때 당분간 정국 반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나라당도 당장 “김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을 버리지 못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경제 회생▼

김대통령이 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분야 메시지는 크게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와 국민의 경제불안심리 해소로 압축된다.

김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금융 기업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 개혁은 우리 경제의 생존과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못박았다. 일문일답에서도 “구조조정이 기본이며 경기대책은 구조조정을 성공시키기 위한 보완조치”라고 우선순위를 밝혔다.

이를 위해 4대 개혁 중 상대적으로 미진한 공공 및 노사개혁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할 뜻을 비쳤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노조 등의 반발은 최대한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되 안될 경우 원칙대로 처리할 방침임을 밝혔다.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는 “지나친 위기의식은 구매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증시침체를 가속화시켜 진짜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며 국민에게 자신감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또 “돈이 있으면 적절히 소비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짚어내되 경제의 가능성 중 좋은 점을 알려 국민이 지나치게 겁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김대통령의 경제인식은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보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측면도 눈에 띄었다.

김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하반기부터 호전돼 (연간) 6%의 경제성장률과 3%대의 물가안정, 3%대의 실업률, 10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연착륙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최근 “구조조정 등이 성공해도 올해 성장률은 5.1%에 머물고 그보다 낮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구조조정과정에서 불가피한 고용불안을 감안할 때 올해 실업률을 3%대로 묶는 것도 쉽지는 않다.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에 대한 설득 노력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날 김대통령은 몇 가지 중요한 수치를 잘못 말했다. 금융기관 경쟁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국내에 와있는 외국은행은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가 1억원이나 우리 금융기관은 5000만원이 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5000만원’을 ‘5000억원’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0%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한 것은 ‘10% 이상’의 착오였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언론 개혁▼

김대통령이 언론개혁에 대해 언급하면서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모두 합심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이라고 말한 것은 언론개혁에 대한 지금까지의 김대통령 발언과는 뉴앙스가 달랐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언론개혁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해 왔다. 주로 언론 자유에 따른 자율책임과 자율개혁을 기대하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에 그쳤다. 그러나 이날 회견에선 개혁의 주체와 대책까지 거론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이미 언론걔혁의 구체적 밑그람을 그려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여권 내에서 감지되는 대언론 강성기류도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맥이 닿아있는 듯 하다. 여권 핵심인사들은 요즘 들어 부쩍 언론을 이대로 놔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야당도 야당이지만 언론의 정부 비판이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정권 비판 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한, 임기후반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이같은 강성기류의 바탕에 깔려 있다. 실제로 정부 여당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여권의 대응도 보다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즉각 야당엔 채찍을, 언론엔 재갈을 이 이날 회견의 핵심메시지라고 비난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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