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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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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우선 “정당의 공천행위는 공직선거라는 국가적 기능수행의 연장선 위에 있는 공적 행위”라고 전제했다.
따라서 이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거나 그 절차가 현저하게 불공정하고 정당 스스로가 정한 내부 규정에 위배되는 경우 사법적인 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결정문에는 ‘밀실공천’에 대한 재판부의 ‘비판적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당의 대의기관이 의사를 반영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취한 절차도 완전히 무시한 채 강현욱(姜賢旭)의원을 어떠한 절차에 의한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공천했다”고 분명하게 적시해 놓았다.
또 공천 탈락자들이 신청서와 함께 낸 ‘결과 승복’ 각서가 잘못된 절차에까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라면 이 각서 역시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므로 무효라는 설명도 들어 있다.
이는 민주당이 올 1월 27일에 만든 후보자 추천규정에서 2월1∼7일에 공천신청을 해야하고 그 기간내에 당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도 이 기간에 공천신청을 한 함운경(咸雲炅)씨 등 12명 대신 공천신청 마감후에 입당한 강의원을 공천한데 따른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3월 28일 선관위의 후보자 등록과정에서 결정의 효력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법적인 시비를 막기 위해 이날 오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결정문을 민주당에 송달했다.
이에 대해 강의원은 “당이 법률검토를 하고 있으며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의원과 민주당은 결정문 송달후 2주일 내에 항고하거나 본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관위 후보자 등록이 4일 뒤로 다가와 항고를 통해 이번 결정을 뒤집고 강의원을 후보로 등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후보등록을 강행할 경우 “여당이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해 당규를 개정해 문제가 되는 지역구의 공천 신청을 다시 받는 등의 대응방안을 강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강의원은 지금 상태라도 무소속 출마는 가능하다.
함씨측 김남근(金南根)변호사는 “만일 강의원이 후보자 등록을 강행해 당선된 뒤 공천이 무효라는 판결이나 결정이 확정되면 당선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법적인 논란이 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조계에서는 민주당과 함씨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이 규정에 따라 공천을 신청한 12명중 한 명을 강의원 대신 후보자로 등록하면 문제는 간단해 진다. 또 함씨가 신청을 취하하면 결정의 효력이 없어진다.
유사한 공천탈락자가 뒤늦게 소송사태를 벌이고 법원의 결정이 총선 뒤에 나올 경우 당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