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실적을 올려라" 후보들 공개앞두고 고민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납세실적을 늘릴 묘수를 찾아라.”

16대 총선에 나설 후보자들이 납세실적신고를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이번 총선부터 후보 등록 때 최근 3년간의 소득세와 재산세 납부 실적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법제화됐기 때문.

이에 따라 부자 후보는 “소득이나 재산에 비해 세금이 지나치게 적은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고 고심 중이고 가난한 후보들은 “세금도 못 내는 사람이 무슨 돈으로 정치를 한단 말이냐는 역풍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납세실적 공개는 후보 본인 명의의 재산세와 소득세만 해당되며 법인이나 가족 명의의 것은 제외된다.

○…납세실적이 공개되면 부자들보다 운동권 출신 ‘386세대’ 등 가난한 후보들이 오히려 문제될 가능성이 있다. 386세대 후보 중엔 세금납세실적이 전무하거나 얼마 안되는 후보들도 있기 때문.

민주당에선 이인영(李仁榮·서울 구로갑) 김윤태(金侖兌·마포갑) 허인회(許仁會·동대문을)후보 등이, 한나라당에서는 김성식(金成植·관악갑) 고진화(高鎭和·영등포갑) 오경훈(吳慶勳·양천을)후보 등이 이런 유형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은 부인의 소득에 의지해왔다는 등 나름대로 사유가 있다. 이인영씨는 “내 직접 소득은 별로 없지만 생활비는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가 충당해왔기 때문에 거리낄 게 없다”고 주장.

허인회씨는 “그동안 컴퓨터 재활용 사업을 했는데 정치지망생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떻게 비칠까 싶어 사업자등록을 아내 이름으로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고 언급.

그러나 정치권 주변에도 잠시 몸담았던 한 출마자는 “집에서 세금 영수증을 찾아보니까 소득세 증명이 총 13만여원밖에 안된다. 명세를 보니까 금융소득 및 원고료에 대한 원천징수 세액 등이더라. 집이 없으니까 재산세도 없고…”라고 고민했다. 그는 “그동안 정치권 인사가 지원하는 정당활동비 등 세금 없는 돈으로 생활해왔다”며 “갑근세를 꼬박꼬박 내는 유권자들에게 너무나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정치권 주변을 오가며 유력인사 등으로부터 용돈을 얻어 쓴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생활해온 ‘정당인’들도 고민. 구여권 출신으로 수도권 지역에 출마한 민국당의 한 50대 출마자는 “정당에서 오가는 돈들이 모두 세금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며 하소연 “이제 와서 세금납부 실적을 찾으려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고 토로.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계층 출신 인사들의 납세실적 공개 명세도 관심사. 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서울 강남을)변호사는 “납세실적 공개를 위해 과거 소득신고 명세 등을 공개한 결과 97년분 소득세로 4600만원 정도를 납부한 것으로 나왔다”며 “이는 변호사의 일반 세액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

변호사의 경우 월 500만∼600만원 정도의 소득을 기준으로 연간 2000여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는 것이 통례로 알려져 있어 이에 미달하는 납세실적을 기록한 법조인 출신 후보들에게는 상당한 시비가 따를 전망.

치과의사 출신인 한나라당 김본수(金本洙·경기 용인을)씨의 경우 재산세를 제외하고 연간 7000만∼8000만원 소득을 신고하고 2000만원 정도의 세금을 납부했다는 것.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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