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거법재협상 지시배경]"여론 성났다" 위기감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청와대는 이번 선거법 개악에 대한 책임 여부와 별개로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다. 특히 합의된 선거법으로 총선을 치를 경우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등 국민적 저항을 초래, 정치권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16일까지만 해도 청와대가 인식한 사태의 심각성은 그리 깊지 않았다.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이 “대단히 유감”이라는 논평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재협상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치개혁 무산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고 있다”는 정도의 감만 전해졌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서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자 김대통령은 “이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칫 선거법 개악의 궁극적 책임이 자신에게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사전제동을 걸기 위해 재협상지시를 내린 것 같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날 “우리도 국회에 몸담은 일이 있었지만 해도 너무 했다” “언론에서 잘 비판했다”는 성토 일색이었다. 물론 협상과정에서 애를 먹인 한나라당에 책임의 대부분을 전가했지만 여당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한 관계자는 “이런 협상을 하려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느냐”고 국민회의 지도부를 겨냥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에서는 “누군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그러나 모양새는 우습게 됐지만 선거법 개악과정에서 실종된 권역별 정당명부제실시, 지역구 축소 등 김대통령의 구상이 여론의 압력에 의해서라도 여야 재협상을 통해 부활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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