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제2창당」전망]인물난 영입효력 미지수

  • 입력 1999년 7월 22일 23시 25분


여권이 정계개편을 통한 정국돌파 방안을 둘러싸고 갈팡질팡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그리고 이른바 ‘제3세력’을 망라하는 ‘2여(與)+α’ 방식의 신당 창당은 2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의 회동에서 일단 무산쪽으로 가닥이 정리됐다. 그러나 신당창당 논의는 오히려 갈수록 무성해지는 양상이다.

특히 김대통령이 22일 전남지역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젊은 피’ 수혈을 통한 국민회의‘제2창당’ 의지를 또다시 강조함으로써 정계개편 논의는 한층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영입작업의 ‘결실’이 전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게 청와대와 국민회의측의 고민. 또 정치개혁협상의 난항과 내각제개헌 유보의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자민련과의 협상도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여서 신당창당 논의는 사실상 ‘뜬 구름 잡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국민회의가 정계개편에 사활을 건 듯 집착하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현재 직면한 상황이 정계개편을 통한 정국돌파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위기국면이라는 인식 때문. 그러나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선거구제가 확정되지 않은데다 ‘옷로비의혹사건’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현상이 아직 추슬러지지 않아 중량급 인사의 영입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 정권 출범 후 여권이 추진해왔던 영남권 기반확대, 즉 ‘동진(東進)정책’을 비롯해 민주대연합 등 정계개편 구상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서도 드러나듯 여권은 구체적 결실맺기보다 말을 앞세워온 것이 사실.

그러다가 자민련측의 반발로 ‘2여+α’방식의 신당창당이 벽에 부닥치자 일단 독자적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1+α’ 방식의 세불리기를 한 뒤 대규모 정계개편에 나선다는 2단계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접촉을 벌여온 명망가들과 재야인사, 외곽단체 인물들을 영입해 8월말이나 9월초 약식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연말로 연기하자는 의견과 일단 ‘대표―실세 최고위원’ 체제를 출범시켜 분위기를 일신한 뒤 연말 ‘헤쳐모여’식 신당창당에 대비하자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김대통령 자신이 22일 “신당형태가 될지 국민회의를 확대개편하는 형태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아직은 여권의 정국구상이 모색단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증좌다. 이같은 난맥상은 95년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이 총선에 앞서 이회창(李會昌) 박찬종(朴燦鍾)씨 등 중량급 인사를 영입하고 이우재(李佑宰) 이재오(李在五) 김문수(金文洙)씨 등 재야인사들을 끌어들여 예상을 뒤엎고 139석의 의석을 획득했던 전례와 비교할 때 대조적이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자민련과의 합당 등 대규모 정계개편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현재 거론되는 ‘입당예비군’들을 영입해도 효과는 미지수”라며 “정계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총재직 사퇴 등 김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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