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검증-쟁점/서울시]한나라당 崔秉烈후보

입력 1998-05-12 19:45수정 2009-09-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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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틀러.’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서울시장후보에게는 이런 별명이 따라다닌다. 히틀러처럼 독선적이지만 기획력과 추진력 상황분석력이 남달리 뛰어나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5,6공과 김영삼(金泳三)정권에서 중용됐던 그는 화려한 경력에 걸맞게 뛰어난 실무능력을 평가받아왔다.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중 부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 3학년 때인 59년 만21세의 젊은 나이에 기자공채 시험에 합격,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85년 민정당 전국구로 12대 국회에 등원하면서 정치쪽으로 방향을 틀 때까지 26년간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최후보는 정계 입문 후 한번도 좌절을 경험하지 않을 정도로 항상 ‘양지’에 머물렀다.

그는 보수우익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평소 행동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업무 스타일과 공직 재직시 했던 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력한 추진력에 대해서는 좋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독선적이고 보수강성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밑에서 청와대정무수석을 맡았던 그는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백담사행 등 ‘5공청산’을 주도했다. 전전대통령은 이를 두고 섭섭함을 보였다.

그는 문공부장관때 KBS파업사태를 경찰을 투입해 해결했고 노동부장관 시절에는 총액임금제 도입을 추진, 사용자측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최후보는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인기만 생각하면 욕먹을 일을 안해도 되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후보는 성수대교 붕괴사건 직후인 94년11월부터 8개월간의 마지막 관선 서울시장 시절 ‘안전시장’을 자임하며 교량 공공건물 등 대형사고 위험성이 있는 곳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당시 그는 “접시를 닦으려다 깨는 것은 괜찮지만 접시를 깨는 게 두려워 더러운 접시를 그냥 둘 경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접시론’을 내세워 공무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78년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설, 30억원대에 이르는 재산 증식과정 의혹설, 공보처장관시절 방송구조를 개편하며 일부 민방에 특혜를 주었다는 설 등이 제기됐지만 최후보는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공약개발에 착수, △시정 개혁을 통한 경쟁력있는 서울시 만들기 △실업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강구 △안전한 시민생활 보장 △교통난 등 시민의 생활고통과 짜증 추방 △문화적으로 매력있는 서울 만들기 등을 5대 공약기조로 설정했다.

〈김차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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