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리 법리논쟁]「JP서리」 첫날부터 위헌공방

  • 입력 1998년 3월 3일 20시 15분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서리체제는 출범 첫날인 3일부터 위헌시비에 휘말렸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위헌의 근거는 헌법 86조1항.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동의 절차가 없었으니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

한나라당은 여기에 한가지 논리를 추가했다. 김종필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단되기는 했지만 안건 자체는 여전히 계류중이라는 것. 다시 말해 국회의 동의 절차가 진행중인데 이것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서리를 임명했으니 명백히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고건(高建) 전총리의 제청으로 내각을 구성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총리서리의 각료 제청권이 법적 근거가 없어 고전총리가 대신 제청권을 행사했다지만 이는 형식적 요건만 갖춘 것이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애초의 취지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이 총리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 동의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국정공백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총리서리를 임명했다는 것. 동의안이 계류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회가 언제 열릴지 모르는데 마냥 기다리란 말이냐”는 논리로 맞섰다. 국회 파행상태에서 대통령이 총리서리를 임명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양쪽 주장 중 어느쪽이 옳으냐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저마다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

그러나 학계에서는 총리서리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 총리서리 제도가 법규에 없는 초법적 발상이라는 것이 그 첫째 이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전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헌법정신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김영삼(金泳三)정부 들어 사라진 ‘구시대 유물’인데 이를 굳이 되살릴 까닭이 없다는 것.

‘총리서리 임명의 불가피성’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이 아닌 다음에야 헌법을 어길 명백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양대 양건(梁建)교수는 총리서리 임명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인 만큼 단순한 법논리로 배척될 수 없다는 여당측 주장에 대해 “헌법의 통제를 벗어나는 행위는 없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근거를 들어 총리서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등 각종 법적 대응을 할 방침.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신청 등 헌법소원도 검토중이다. 그럴 경우 총리서리제에 대한 정치권의 위헌공방은 사법적 차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만약 사법부의 판단이 위헌쪽으로 내려질 경우에는 보통 일이 아니다. 총리서리체제가 출범한 3일 이후의 모든 행정행위가 법적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 법논리로만 따지면 총리서리의 부서로 발효된 대통령의 행위도 무효가 될 처지다.

여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해도 당장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가 문제다. 총리서리체제 자체를 무효로 간주하는 야당이 행정부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것이 분명하다. 추경예산안과 각종 경제회생 후속조치 등도 한동안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송인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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