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선의 최대쟁점은 개헌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 2인이 내각제 개헌을 담보로 후보 단일화(DJP연대)를 이루자 이회창(李會昌) 조순(趙淳) 이인제(李仁濟) 3인은 이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내각제 반대 세력의 결집(반DJP연합)을 추진하고 있다. 반DJP연합이 성사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대선이 3자구도로 가든 양자대결로 가든 내각제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나라의 권력구조 틀을 바꾸는 개헌 공방과 이를 둘러싼 후보간 연합가능성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해 본다.》
12월18일 치를 제15대 대통령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과거처럼 단순히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로만 상정할 수 없게 됐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과 함께 21세기 초입에 들어서는 나라의 권력구조 형태에 대한 선택을 동시에 해야 한다. 이른바 「DJP공약」 때문이다.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DJ)총재는 「1999년 12월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 2000년부터는 의원내각제 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후보군(群)중 한사람이었던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를 눌러 앉히고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
DJP연대에 맞서는 원내 다수당인 신한국당의 입장은 이에 따라 「차기정권 임기내 내각제 개헌 절대반대」로 굳어졌다. 민주당 국민신당(가칭) 등 다른 「반(反)DJP진영」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 3당은 모두 DJP연대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두 김씨의 국민의사에 반한 야합」으로 규정했다. 「내각제냐 아니냐」가 「세대교체냐, 정권교체냐」와 함께 올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급속히 부상한 것이다.
DJP진영이 설정한 의원내각제 실시 시점은 21세기 원년(元年)과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내각제 공방은 단순히 특정후보의 득표, 저지전략 차원을 뛰어넘어 정치발전론 사회발전론의 핵심주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컨대 「한국사회에 적합한 21세기형 정부형태」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DJP진영은 헌정사상 유례없이 정권교체론과 그간의 권력구조 틀을 한꺼번에 바꾸는 내각제로의 개헌주장을 한 묶음으로 던져놨다. 만약 DJP공동정부가 들어선다면 우리 사회가 맞게 될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를 헌정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DJP가 선거에 승리해 내각제 개헌을 하는 상황이 오든 안오든 대선전에서 정당간의 연대와 이를 둘러싼 내각제공방이 벌어지게된 그 자체도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3일 내각제 개헌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워 후보단일화 서명식을 갖는 DJP진영이 주장하는 내각제의 당위성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적 지도력」의 확립이며 그 다음이 지역주의의 극복이다. 대통령의 독선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적 지도력」의 확립이 긴요하고 「민주적 지도력」은 대통령중심제보다 내각책임제를 통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역대 정권이 대선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해왔기 때문에 내각제가 시대적 요청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DJP진영은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한마디로 DJP 내각제개헌론은 「김대중대통령만들기」를 위한 김대중 김종필 두 김씨의 「권력야합」이며, 국민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헌정파괴 기도라는 것이다.
학계의 시각도 엇갈려 있다. 또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DJP진영의 내각제개헌론이나 반DJP진영의 「권력야합론」 「헌정파괴론」이 모두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발상에 가깝지, 「21세기형 정부형태」나 「통일환경 변화에 대비한 정부형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형태」에 대한 진지한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얘기도 한다.
또 DJP진영이 내각제의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역주의 극복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적지않다. 내각제개헌이 호남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국민회의와 충청권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민련이 주도할 경우 내각제는 지역주의 해소가 아니라 「지역주의 고착」의 역효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DJP의 내각제개헌이 「영남포위전략」으로 투영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DJP의 내각제공약에 관한 심판은 물론 유권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대선의 최대 이슈로 급부상한 내각제개헌론이 국가장래에 대한 국민의 진지한 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대선 득표전략 차원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내각제 공방이 누구나 공감할만한 미래에의 철학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