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겸손해졌다…「집권 자신」한듯 공무원들에 공손

  • 입력 1997년 9월 28일 20시 25분


23일부터 27일까지 96년도 예산결산심의를 위해 열렸던 정기국회 상임위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기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여야간에 고함과 삿대질이 사라졌고 상임위에 출석한 정부 각 부처 기관장에 대한 윽박지르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초 이번 정기국회는 대선 전초전으로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외로 상임위 회의장 곳곳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쳤다. 갑자기 상냥해진 야당의원들의 태도에 정부기관장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웃음이 담긴 여유있는 정부답변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상임위가 평화스럽게 진행된 것은 집권에 자신감을 가진 국민회의측이 「공무원들을 가급적 자극하지 말자」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측은 이같은 당의 방침에 따라 국정감사 자료도 가급적 공동으로 요청하고 국감 증인채택 요구도 크게 줄였다. 이 때문에 국감증인은 작년의 32명에서 올해는 25명으로 줄었다. 상임위에서 나타난 또 다른 진풍경은 여당의원들이 야측에 대해 『집권 후를 생각해 일을 처리하라』고 「충고(?)」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24일 내무위의 중앙선관위 예산결산심의에서 추미애(秋美愛)의원 등 국민회의 의원들이 『선관위가 지정기탁금제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과감하게 폐지의견을 내라』고 촉구하자 여당의원들은 일제히 기묘한 논리를 내세우며 야당측을 설득하고 나섰다. 『어차피 야당이 집권하면 이제 그 쪽에 기탁금이 많이 들어올텐데 왜 그 좋은 제도를 폐지하자고 그러느냐. 집권할 때를 생각해 잘 판단하라』는 게 여당의원들의 설득논리였다. 25일 재정경제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여당의원들은 야당의원들에게 『예산이 풍족해야 정부정책을 추진할 때 좋다. 이번에는 야당이 집권할테니 내년도 예산심의 때 너무 깎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신한국당의 목요상(睦堯相)원내총무는 『솔직히 요즘처럼 야당이 조용하면 여당총무할 맛이 난다』면서도 『왠지 기분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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