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의 기상도는 북한외교관 망명사건으로 또 한차례 긴장된 분위기를 띠고 있으나 대북 경수로지원사업은 예정된 코스로 갈 것 같다. 경수로사업의 표면상 목적은 북한의 전력난 해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 전력난해소 도움안돼 ▼
그동안 북한의 발전시설용량은 7백38만㎾(96년말 현재)로 평가됐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잉평가인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북한의 실제 발전능력은 6백30만㎾(수력3백20만㎾, 화력3백10만㎾)로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96년도 한국의 발전시설용량 3천5백70만㎾의 17.6%에 해당된다.
그런데 시설용량과 실제 발전량은 별개의 것이다. 북한의 96년도 발전설비의 평균이용률은 수력 32.3% 화력 34.1%로 추정되기 때문에 실제 발전량은 2백10만㎾로 북한의 연간전력수요 4백10만㎾의 51%가 된다. 이를 토대로 산출한 96년 북한의 실제 전력생산량은 1백2억4천만㎾/h(수력87억4천만㎾/h·화력15억㎾/h)로 한국의 96년도 전력생산량 2천55억㎾/h의 5%에 불과하다.
더구나 북한의 송배전 시설은 대부분 노후한 일제시대의 것이어서 이로 인한 송배전 과정에서의 전력손실이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전력사정의 근원적 개선을 위해 북한은 발전시설을 늘려 발전량을 높이고 송배전시설을 개량해 송배전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미 파탄상태에 있는 북한의 경제력으로는 이 두가지 일은 사실상 실현불가능하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경수로사업이다.경수로사업은 각기 1백만㎾용량의 「경수형 원전」2기를 2005년까지 북한땅에 건설해 준다는 것이다.
2기의 경수로가 가동을 시작하면 북한의 전력난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가. 북한의 경제상황에 2005년까지 큰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의 송배전시설은 지금보다 더 노후해져 전력의 송배전손실은 더욱 커질 것이다. 2005년이면 북한의 인구는 더 늘어나 전력수요의 자연증가가 불가피해 진다. 결국 2005년에 2백만㎾의 시설용량이 증가되더라도 전체 전력수급차원에서 그로 인한 경제효과는 「새발의 피」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1백만㎾짜리 경수로 2기로 북한의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과대포장은 금물이다.
그렇다면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94년10월21일 「美―北(미―북) 제네바합의」에서 대북경수로지원에 합의한 것은 「북한 조기붕괴론」에 의거해 『경수로가 건설되기 전에 북한이 붕괴, 소멸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남한만 「봉」이 될 우려 ▼
미국의 목적은 경수로건설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사업을 이용해 붕괴를 앞둔 북한이 절망감으로 인해 엉뚱한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북한을 관리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경수로 건설비용을 韓日(한일) 양국이 부담하는 한 미국은 경수로가 어찌되든 상관없으며 다만 북한이 『핵동결을 유지하면서 전쟁도발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미국의 몫으로 돼 있는 대북중유지원비용마저 슬금슬금 한일 양국으로 떠넘기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사업을 해야하는가. 아무래도 60억달러(약5조4천억원)를 초과할 건설비는 결국 그 4분의3이 우리 몫이 될 모양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운영비의 상당부분과 함께 연간 7천만달러에 이르는 중유대금의 상당부분마저 우리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송배전선을 개비하는 비용도 결국은 우리 몫이 돼야 할지 모른다. 결국 경수로사업에서도 우리는 「봉」의 역할을 할 것인가. 냉철하고 분명한 외교자세가 요구된다.
이동복(국회의원/前남북고위급회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