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조순시장-KT, 뒤바뀐 삼각관계

  • 입력 1997년 8월 12일 20시 38분


趙淳(조순)서울시장이 대선출마의사를 공식표명하자 국민회의 鄭東泳(정동영)대변인은 12일 「옛날 일」 하나를 꺼냈다. 『우리는 조시장이 야인(野人)으로 있던 시절 삼고초려(三顧草廬)끝에 시장후보로 모시고 당선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다. 현재 조시장을 등에 업으려는 민주당의 李基澤(이기택) 전총재는 당시 조시장의 영입과 선거운동을 방해했었다』 金大中(김대중)총재 조순시장 이기택전총재 사이의 「애증(愛憎)관계」를 「DJ(김대중)잣대」로 얘기한 것이다. 물론 이 전총재의 해명은 다르다. DJ가 정계복귀와 대선4수를 위한 방편으로 조시장을 영입하려 했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설명이다. 『조시장을 반대한 게 아니라 DJ의 정계복귀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95년 6월27일 지방선거 이후 각자가 처한 정치적 입지에 따라 서로 「심한 감정의 기복(起伏)」을 겪어왔다. 김총재가 조시장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조시장은 김총재가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고 정계에 복귀하자 사석에서 『유신쿠데타』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두사람간의 관계는 이후 급랭했다. 95년12월30일 조시장은 이전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을 탈당, 「무당파(無黨派)」가 됐다. 하지만 조시장은 국민회의에 합류하지도 않았다. 특히 96년 4.11총선에서 국민회의가 패하고 당내에서 이른바 「제삼후보론」이 등장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제삼후보」가 조시장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삼후보론」의 주창자들이었던 金相賢(김상현)의원 金槿泰(김근태) 鄭大哲(정대철)부총재 등 비주류가 지난 5월 경선에서 참패하자 조시장은 전당대회에 참석, 『여러분에게 천시(天時)가 왔다』며 김총재를 고무시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밀월」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이전총재의 적극 권유로 조시장이 대선출마결심을 굳히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조시장이 김총재에게 「적대적인」 이전총재와 「한 팀」을 이루면서 김대중―조순―이기택 세 사람의 「애증관계」는 95년 당시와 1백80도 뒤바뀐 셈이 됐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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