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李會昌(이회창)후보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되던 시각, 서울 약수동의 한 역술인 집에는 축하전화가 빗발쳤다.
신당 앞에서 기도중이던 무속인 金賢貞(김현정·53·여)씨는 이후보 계보 정치인 및 의원 부인들의 잇따른 「이회창당선 예언 성공」 축하인사에 『앞으로 더 큰일이 남아 있는데 아직 인사는 이르다』고 말하면서도 싫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씨는 일찌감치 이후보의 당선을 공공연하게 예언하고 점술로 은근히 「이회창 대세론」을 퍼뜨리는데 일조한 「이회창계보 역술인」중 한 사람.
이처럼 선거철만 되면 은밀하게 벌어지는 정치인과 역술인의 내밀한 관계는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김씨의 경우는 신한국당 경선전 각각 한 냥쯤 되는 「금돼지」 「은돼지」상(像)에다 큰 「대(大)」자를 새겨 이를 이후보 계보 핵심정치인들이 품에 지니고 다니도록 했다. 돼지띠인 이회창후보가 대통령이 되도록 주술을 가한 것이다.
이후보의 신한국당 대선후보 당선을 예언한 역술인은 또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역술인 중 한명인 鄭臥龍(정와룡·50)씨는 관상과 사주를 함께 풀어 특이한 예언을 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정씨는 이후보를 「사변대망의 상」, 즉 뱀이 변해 이무기가 된 상으로 남모르게 각광을 받아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정씨는 이에 앞서 자신의 책 「흑담사」(95년 출간)를 통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씨를 끝으로 영남을 대표하는 대구 팔공산의 정기(精氣)가 쇠했고 김영삼시대를 지나 앞으로는 비영남권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공표한 적이 있다.
다만 충청출신의 이후보는 눈에 아직 살기(殺氣)가 남아 있고 음색이 고르지 못한 게 대선가도가 평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야당 대통령후보인 金大中(김대중) 金鍾泌(김종필)총재의 상은 각각 「동굴면호(洞窟眠虎·동굴속에 졸고 있는 호랑이 상)」와 「영우보전(靈牛步田·신령스런 소가 밭두렁을 걷고 있는 상)」으로 묘사한다.
즉 국민회의 김총재는 활동하기가 쉽지 않은 호랑이이며 자민련의 김총재는 귀골로 태어났지만 한가로이 노는 운세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두 김씨 중 한 사람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반격하는 역술인들도 적지 않다.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는 기공사이자 「기예언(氣豫言·기를 통한 예언)을 하는 金映學(김영학·41·명암기공연구소)씨는 얼마전 휴전선에서의 총격사건을 정확히 예언해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김씨는 『신한국당 이회창후보의 당선은 곧 DJ를 도와주는 것』이라며 『사자상을 하고 있는 DJ에게서는 다른 대선후보들에 비해 매우 강한 기(빛)가 뿜어나오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은 무난하다』고 예언했다.
특히 JP가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후보쪽으로 자신의 기를 돌렸듯이 이번에는 그 기를 김대중후보쪽으로 맡기고 있는 형세라는 설명이다.
역술인 梁元碩(양원석·일명 백민·도원정사)씨도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사람의 사주를 뽑아 미래를 내다본다는 양씨는 이미 지난해 11월 『김심(金心·김영삼대통령의 마음)은 젊은 후보로 세대교체를 원하지만 당내 사정이나 국민 여론에 따라 낙점의 형태를 취하지 못하고 공개적인 경선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또 상대적으로 여당후보의 프리미엄은 줄어들어 야당의 선전이 기대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대통령 제1순위는 김대중총재가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민련 김종필총재에 대해서는 지난 94년 김일성사망 예언으로 일약 스타가 된 여성 무속인 沈震頌(심진송)씨와 「자미두수(역학의 일종)의 대가」로 꼽히는 嚴昌鎔(엄창용)씨가 「JP필승」을 외치고 있다.
심씨는 내각제 하에서의 JP 승리를 외쳐 다소 정치권의 움직임과 거리가 먼 예언을 한 반면, 엄씨는 현행 선거하에서의 JP대통령을 주장한다. 엄씨는 JP가 DJ와의 공조가 깨진 후 독자적으로 대선가도로 나서게 되며 대통령후보 중 97년 운세가 가장 길하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도 바라볼 수 있다고 예언했다.또 정씨는 JP가 영우보전형의 좋은 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97년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그의 정치생명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이번 대선과 관련, 역학계에서는 요즘 색다른 「예언」도 등장하고 있다. 이번 대선자체가 불투명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역술인은 여권 인사들, 특히 청와대 비서진과 밀접한 교류를 갖고 있는 역술인 오재학씨와 「육임(역학의 일종)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홍종원씨.
사주풀이와 영(靈)능력을 함께 사용한다는 오씨는 『비영남권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의 영상에는 지금의 대선후보들 중에는 왕관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움직임이나 남한의 돌발적인 변수에 의해 대선이 지장을 받을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