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차마 인간의 땅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 굶주림의 참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한 한국인 사업가가 북한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기아의 공포에 뒤덮여 있는 농촌의 생활 실상을 비밀리에 촬영, 동아일보에 제공한 비디오테이프는 전율의 통증을 느끼게 한다.
함경북도 회령시 한 마을의 조그마한 농가.
방과 부엌이 트인 채 함께 붙어 있는 집안. 30대 중반의 부부와 60대의 어머니 등 3명이 방안 이곳 저곳에 힘없이 쓰러져 있다.
방 한가운데 때가 찌들어 있는 남루한 이불위에 모로 누워 있는 어머니는 머리를 천으로 동여맨 채 부황기가 완연했다.
가구라고는 붙박이 나무장과 유리가 깨어져 나간 나무 찬장이 전부. 바닥에는 곳곳이 찢겨져 나간 채 곰팡이가 번져있는 비닐장판이 깔려 있고 천장에 매달린 전등기구에는 전구가 없다.
점심시간. 며느리가 힘없이 일어나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칼로 잘게 썬 한움큼 정도의 풀에 2숟갈 정도의 밀가루를 섞어 물이 담긴 큰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펴 끓이기 시작했다.
한국인 사업가가 바가지에 절반가량 담겨 있는 밀가루를 가리키며 『앞으로 얼마나 더 먹을 수 있느냐』고 묻자 이들은 『우리 식구 4명이 앞으로 보름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며느리는 『2개월전 20근 정도 얻어온 것이 이제 이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잠시후 솥에서 꺼낸 것은 풀죽도 못되는 멀건 풀국. 국물위로 풀이 둥둥 떠다녔고 끈기라고는 하나도 없다. 며느리는 사료보다 못한 국을 퍼 4개의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반찬은 소금뿐. 부부는 그때까지 방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일으켜 세운뒤 며느리가 어머니에게 국을 떠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두숟갈만 먹은뒤 풀의 쓴맛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손을 내저으며 더이상 먹으려 들지 않았다.
어머니를 다시 눕힌 부부는 국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뒤 국물을 떠먹기 시작했다. 물에 끓였어도 풀의 쓴맛은 빠지지 않아 부부는 국물만 마셨다.
사업가가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명하고 있느냐고 묻자 이들 부부는 『모두 우리처럼 풀국을 끓여 먹든지 아니며 굶는다』며 『지난해 3월부터 배급이 끊겨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알아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지난해 배급이 끊긴 이후 먹을 것이 없어 몸져 누운지 8개월이 넘었다』며 『얼마 못사실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눈물도 말라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그는 『현재 마을에는 40가구에 주민 1백50여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지난해 배급이 끊긴 이후 마을에서 어린이만 40∼50명이 굶어 죽었다』고 전했다.
〈이현두·박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