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李洪九(이홍구)상임고문이 총재1인에게 집중된 권력의 분산을 위해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한 것은 일리가 있다. 그의 이런 문제제기는 물론 李會昌(이회창)대표체제 출범과 함께 불거진 대선(大選)후보의 불공정경선 우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정부여당의 1인 권력집중이 빚은 부작용과 폐해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이 총체적 난국도 결국 과도한 권력집중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위기의 출발점인 노동법 날치기 파동만 해도 그렇다. 당과 국회운영이 오직 당총재 한 사람의 뜻에 매달려 왔기 때문에 국민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새벽에 버스를 타고 의사당에 숨어들어가 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한보사태를 둘러싼 그간의 여당 자세도 마찬가지다. 무한(無限)권능을 지닌 당총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관련된 탓에 신한국당은 여론의 질책에도 눈치보기로 일관, 사태가 악화됐다.
한보사태가 권력집중이 빚은 비리임은 공판과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내각에 우선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으니 집사에 불과한 총무수석비서관이 은행에 대출압력을 넣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총무수석은 韓利憲(한이헌) 李錫采(이석채)전 경제수석에게까지 대출압력 행사를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집중된 권력의 정점(頂點) 주변에서 부정비리가 예사롭게 일어났다는 반증(反證)이다. 이제는 분명하게 제도적으로 이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집권여당이든 정부든 민주적 의사결정을 무시한 독점권력의 독선 독단 독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집권당의 경우 현재의 총재에서 대표로 이어지는 단선(單線) 의사결정 및 집행구조보다 당원의 중지(衆智)를 모아 모든 일을 협의로 처리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당장 대선 예비후보자들간에 불거진 불공정경선 시비를 차단할 수 있고 나아가 당운영의 민주성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도 그런 집단적 협의제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이회창대표를 지명한 날로부터 당내 대선주자들간의 갈등은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다. 공정경선을 위해 당대표와 후보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대표가 적절한 설명없이 대표를 맡은 것도 한 이유다. 특히 이대표 진영은 대세론(大勢論)을 흘리며 이미 그가 후보로 결정된 듯 앞서 나가고 있어 경쟁자들의 의구심을 사고 있다.
여당이 이번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모양만의 경선으로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구태(舊態)를 되풀이한다면 더 이상 기대할 정당이 못된다. 권력내부의 밀실합의로 만들어진 후보라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권력집중에 대한 반성에서도, 정당으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당운영의 민주성 투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신한국당은 집단지도체제를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