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대표 지명 안팎]못버린 독선…또 『깜짝쇼』

  • 입력 1997년 3월 13일 20시 10분


[이도성 기자] 신한국당의 새 대표위원을 결정하기 위한 전국위원회 전야(前夜)인 12일 밤. 정치권 안팎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 들었다. 신한국당총재인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누구를 새 대표로 임명, 전국위원회에 동의를 구할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퇴진을 눈앞에 두었다고는 하나 당3역 등 고위당직자들조차 이날 밤 청와대 비서실에 대표 내정자를 알아보느라 허둥지둥했다. 그동안 대표 물망에 올랐던 당의 고문과 중진들은 저녁내내 취재기자들의 확인 문의전화에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한사람 예외없이 『나는 아니다. 누가 되는지 모른다』는 답변 뿐이었다. 심지어 이미 대표로 내정된 李會昌(이회창)고문도 이날 밤늦게 자택에 들어서면서 『나는 아니라니까』라고 잡아뗐다. 당총재가 당헌상 2인자를 아무런 후속절차 없이 임명했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현재 신한국당 당헌(8조)은 총재가 전당대회의 동의를 얻어 대표위원을 임명하게 돼있다. 그리고 전당대회 소집이 곤란할 경우 전국위원회(위원정수 1천5백명이내)가 대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절차를 둔 이유는 당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다. 즉 총재가 당원의 「총의」(總意)와 관계없이 「자의」(恣意)로 대표를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명시적 규정인 것이다. 또 당원 대의원 전국위원 등 당의 주체를 「거수기」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김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이같은 당헌취지를 무색케 한 「독선」의 극치였다. 여당의 대표는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인」(公人)이다. 국민적 검증을 거치면 더 바랄 나위없으나 최소한 당헌에 규정된 당내 여론수렴절차는 제대로 지켜야 마땅하다. 전국위원회 행사장에서 마치 복권당첨자 뽑듯이 들이밀고 만장일치 박수로 대표를 결정짓는 것은 당헌취지는 물론 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구태(舊態)일 뿐이다. 김대통령이 그렇게 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신한국당의 새 대표임명을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술수(術數)정치」의 일단이라는 추단(推斷)이 가능하다. 아들문제다, 한보문제다 해서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김대통령이 주특기로 꼽혀온 「깜짝쇼」식 발상을 다시 끄집어냈으리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번에 보인 행태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은 한보는 물론 한 비뇨기과 의사까지 나서서 연일 폭로하는 「金賢哲(김현철)추문」으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심정이다. 어정쩡한 대국민담화 하나를 발표하고 「대도」(大道)가 아니라 「샛길」로 돌아 우회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회창」은 이회창이고 「김현철」은 김현철이다. 당직자들의 입에서조차(12일 저녁 대표내정자 확인과정에서) 『대통령이 아직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면 「깜짝쇼」는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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