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사망한 북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金光鎭은 1927년 평양 출신으로 지난 85년 대장에 이어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기용된 후 92년 4월 차수로 승진했으며 95년 10월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된 군부실세이자 金正日의 핵심측근.
92년 5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북측 위원장으로도 일한 바있는 그는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때까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그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북한 군부 실세였다.
많은 사람들은 혁명 1.5세대인 그가 지난 21일 사망한 崔光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을 맡을 것으로 점쳤었다.
그러나 최광에 이어 그 마저 사망함으로써 북한군의 최고위 실무부서인 인민무력부 1,2인자 모두가 자리를 비우는 이례적인 사태가 빚어졌으며 이에 따라 군부지도부에 대한 큰 폭의 개편이 예상된다.
김광진은 만경대포병학원, 소련군포병기술학교를 거쳐 70년 포병군단장,72년 포병사령관을 거쳤으며 90년대 들어 한반도 문제에 보다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90년 3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92년까지 6차례나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를 지내 한국 관계자들로부터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김광진은 95년 2월 吳振宇 장의위원회 명단에서는 서열 30위내에 못 들었으나 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회 명단에서는 23위에 올라 북한군내에서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었다.
그는 지난 9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2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 보고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최신 무기도 생산이 가능하다』고 발언하는 등 군부내에서 강경파로 알려져왔다.
김광진은 84년 당중앙위원회 정위원, 90년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후 사망전까지 이 직위도 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