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인질극/현지표정]테러범,인질들과 즉석토론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19분


○…억류 71시간만에 풀려나 21일 정상적으로 대사관에 출근한 李元永(이원영)대사는 표면적으로는 정상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작은 일에 놀라는 등 악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 그는 이날 대사관 근처를 지나가던 차량에서 엔진 폭음이 들리자 깜짝 놀라며 당황해하기도 했는데 대사관측은 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 이날부터 두명의 무장경찰이 대사관 경비에 추가되기도. ○…한국대사관이 세들어 있는 9층짜리 빌딩에는 그리스 네덜란드 대사관도 함께 있는데 네덜란드 대사는 뉴욕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일본대사관저 만찬에 참석하지 못해 화를 면했고 한국과 그리스 대사는 모두 인질에서 조기에 풀려나 대사관직원들은 이 건물이 풍수지리상 좋은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풀이하기도. ○…21일 오후6시 리마광장에서는 가톨릭 페루교구 알사모라 대주교 주재로 테러범을 규탄하는 범시민 운동이 열렸는데 사회자는 스페인어와 일본어 등 두나라 언어로 진행해 이 나라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도. 이날 집회에는 수만명이 참석해 리마시내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는데 인질에서 풀려난 국회의원 디에스칸세코는 갇혀있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각오로 테러범에 대응하자고 연설. ○…사건이 발생한 일본대사관저 골목길 바로 맞은편에는 한국교포 申鉉七(신현칠·36)씨의 집이 있는데 게릴라와 정부군간의 총격전이 벌어질 때 여러발의 총알이 날아와 유리창이 대부분 깨지고 유탄이 2층 안방벽에 박혀있는 모습. 신씨 가족은 사건발생시간에 크리스마스 특집 TV프로에 출연하는 아들과 함께 방송국에 가 있어 화를 면했지만 경찰 저지선 안에 살고 있어 출입이 부자유스러운데다 무력진압이 있을지도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20일 밤 석방된 39명의 인질들은 일본 대사관 내부의 상황이 그리 살벌하지만은 않으며 대부분 지식인인 인질과 교육 수준이 상당한 반군들간에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언. 3일간 인질로 잡혀 있다 석방된 언론인 기업인 대학총장 등에 따르면 대사관저에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즉석 토론과 강의가 자주 이뤄졌다고. 토론 주제는 법률 문제에서 요리 기법까지 매우 다양했으며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반군들도 종종 토론에 끼어들어 민영화 정책 등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고. 〈리마〓李圭敏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