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에 ‘8시간 춘향가’ 완창… 기염 토한 무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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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무형문화재 고향임 명창
2002년이후 4번째 완창 성공
고수 6명이 북채 바꿔잡아

28일 오후 대전 대덕구 송촌동 대전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고향임 명창이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하고 있다. 고향임 씨 측 제공
28일 오후 대전 대덕구 송촌동 대전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고향임 명창이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하고 있다. 고향임 씨 측 제공
“행복합니다. 소리의 완성에는 끝이 없지만 춘향가는 적어도 고향임이 가장 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65세의 나이로 4번째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고향임 명창은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28일 오후 2시 대전 대덕구 송촌동 대전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 “영웅열사, 절대가인 삼겨날 제(생겨날 때)….” 고 명창은 춘향 어머니의 태몽을 묘사한 대목으로 춘향가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고 명창의 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공연 내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손에 땀을 쥔 관객들을 웃고 울렸다.

드디어 오후 11시 경. “고수 팔도 아프실 테요, 소리꾼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판소리의 마지막에 하는 말로 북소리를 흉내 낸 소리).” 고 명창이 마지막 사설에 객석에는 “얼씨구” “얼쑤” 축하 추임새의 물결이 출렁였다.

공연을 지켜 본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최혜진 교수(판소리 이론 전공)는 “6명의 고수들을 북채를 바꿔 잡았지만 고 명창은 2시간여 만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쉬면서 흐트러짐이 없었다”며 “완창 내내 극한의 통성을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고 명창이 부른 춘향가는 웬만한 명창들이 좀처럼 엄두를 못 낸다는 동초제 춘향가다. 동초 김연수 명창(1907¤1974)이 여러 춘향가의 좋은 대목들을 두루 넣는 바람에 다른 춘향가(4¤6시간 분량)들 보다 훨씬 길어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다. 동초제 춘향가 완창이 그 자체가 화제이거나 대단한 경지로 평가 받는 이유다.

고 명창은 A4용지 80쪽 분량의 춘향가 사설을 자막에 의존하지 않고 또박또박 쏟아냈다. 사회를 본 정병헌 전 판소리학회장은 “고 명창이 새로운 소리 해석과 지속적인 완창 도전으로 판소리의 성스러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격찬했다.

완창이란 판소리의 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1968년 박동진 명창의 흥보가(5시간 분량)가 처음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토막소리 위주의 판소리 공연이 주류를 이뤘다. 이후 완창을 했는지, 몇 회나 했는지, 판소리 중 몇 작품을 했는지 등이 명창의 기량을 판단하는 중요 가늠자가 됐다.

고 명창은 동초제 춘향가를 4번 완창한 것은 물론 앞서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도 완창 했다. 2019년 춘향가 완창 소식을 들은 프랑스의 세계문화의 집이 올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상축제’에 그를 초대했다. 고 명창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미뤄지고 있는 프랑스 공연이 성사되면 서양 사람들에게 춘향가를 선보여 우리 가락의 진수를 보여 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고 삶에 대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기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판소리 가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관객들에게 애환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며 “매년 한번씩 완창에 도전함으로써 스스로의 공부에 매질도 하고 제자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 명창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연극을 하다 20대 중반의 다소 늦은 나이에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오정숙 명창의 눈에 띄어 ‘오정숙 이수자’로 지정됐다. 2000년 서울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대상, 2006년 제32회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이론적 접목을 위해 목원대 한국음악과를 2002년 졸업한 뒤 2004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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