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세상 떠난 ‘고무신 할머니’… 노점하며 평생 모은 1억, 익명으로 기부하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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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충북공동모금회에 수표 전달… 7개월전 사망 소식 뒤늦게 알려져

노점상을 하며 모은 돈 1억 원을 기부한 익명의 70대 할머니가 2013년 11월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았을 당시 찍은 고무신 신은 모습.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노점상을 하며 모은 돈 1억 원을 기부한 익명의 70대 할머니가 2013년 11월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았을 당시 찍은 고무신 신은 모습.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평생 노점상을 하며 모은 돈 1억 원을 기부한 70대 할머니의 사연이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만에 알려졌다.

 29일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13년 11월 20일 충북공동모금회 사무실에 하얀 고무신을 신은 수수한 옷차림의 한 할머니(79)가 찾아왔다. 이 할머니는 “좋은 곳에 써 달라”며 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억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 자세한 신상을 밝히지 않았다. 충북공동모금회 직원들은 할머니의 뜻을 존중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대신 할머니가 신은 고무신을 사진으로 남겼다.

 할머니는 “6·25전쟁 때 월남해 청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았고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자식들도 잘 키웠다”며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충북 아너소사이어티의 8호 회원이 됐다.

 이후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명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충북공동모금회 관계자는 “할머니는 직원들이 드시라고 건넨 차를 사양할 정도로 남에게 신세지는 걸 꺼리셨다”며 “하지만 직원들과 대화할 때는 먼저 농담을 건네는 등 쾌활한 성격이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1월 중순을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발길은 끊겼다. 그리고 6월경 할아버지가 혼자 찾아와 고인이 된 할머니 소식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4월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를 치르느라 경황이 없어 이제야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1344명(21일 기준)이다. 이 중 157명은 할머니처럼 익명의 회원이다. 아너소사이어티 전체 회원의 누적 약정금액은 1431억 원이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고무신 할머니#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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