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관심갖는… 아픔의 공간 DMZ”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철원서 열리는 ‘리얼 DMZ 프로젝트’

비무장지대 접경지에서 평생을 보낸 홍명이 씨(왼쪽)와 그의 삶을 판화로 담아낸 딸 양연화 작가(위쪽 사진). 양 씨는 “어머니의 삶이 통째로 ‘DMZ 지역 출신 작가’의 특별한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영상작품 ‘연날리기-철원 DMZ’(아래쪽 사진)를 선보인 진철규 작가는 “삼엄한 땅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춤추는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철원=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비무장지대 접경지에서 평생을 보낸 홍명이 씨(왼쪽)와 그의 삶을 판화로 담아낸 딸 양연화 작가(위쪽 사진). 양 씨는 “어머니의 삶이 통째로 ‘DMZ 지역 출신 작가’의 특별한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영상작품 ‘연날리기-철원 DMZ’(아래쪽 사진)를 선보인 진철규 작가는 “삼엄한 땅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춤추는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철원=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누군가 깊이 괴로워한 자리에는 무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어떤 것이 남는다. 그 어렴풋한 기운이 지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비무장지대(DMZ)는 그런 공간이다.”

23일까지 DMZ 접경지인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일대에서 열리는 ‘리얼 DMZ 프로젝트 2015: 동송세월’전에 참여한 함혜경 작가(32)의 영상작품 ‘멀리서 온 남자’ 속 대사다. 13일 동송농협 지하 전시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관심을 갖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돌아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해석을 내놓을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연인을 아프게 떠나보낸 ‘외국인’ 주인공이 더 큰 이별과 아픔의 공간을 찾아와 느끼는 바를 사적인 방식으로 담아냈다”고 했다.

이 기획전은 미술기획단체 ‘사무소’가 DMZ 접경 일대에서 2012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다. 관광 인프라와 군사 시설을 활용한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철원 인구 85% 이상이 거주하는 상업 중심지로 배경을 옮겼다. 시외버스터미널, 교회, 통신사 대리점, 한의원, 치안센터 공간 일부를 빌려 작품을 걸었다. 김선정 사무소 디렉터는 “광복 후 70년 역사는 곧 분단과 DMZ의 70년이다. 예술을 확대경 삼아 DMZ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이곳 주민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살펴보려 했다”고 말했다.

작가 49팀이 이 지역의 장소성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해 반영한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거리 곳곳에서 선보였다. 많은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익숙한 일상 공간에 스며든 예술 작업을 흥미로운 듯 살폈다. 박찬호 철원군 관광문화과장은 “최근 북한군의 지뢰 도발로 어제부터 대북 방송이 시작됐다. 다음 주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근방에서 대규모 사격 훈련도 한창이다. 민감한 시점이지만 전시가 생활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온 덕에 주민의 관심은 커졌다”고 했다.

철원 출신 작가 5명이 참여해 DMZ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이 ‘이방인의 감상’에 머물지 않도록 도왔다. 양연화 작가(35)는 어머니 홍명이 씨(58)가 결혼 후 38년간 꾸준히 촬영해 온 사진을 밑그림 삼아 판화 38점을 제작했다. 양 씨는 “외지 삶을 경험하기 전에는 DMZ 접경의 특수성이 무엇인지 몰랐다. 철들고 나서야 미군에서 얻은 약으로 버티며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삶이 어떤 ‘특수성’을 짊어져야 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전시실을 찾은 홍 씨는 “늘 예쁜 짓만 골라 하는 자식”이라며 “요즘 남북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익숙하다.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식물치료’를 주제로 작업하는 김이박 작가(33)의 작품은 커피전문점 입구 아래 놓은 작은 화단 두 개다. 내용물은 이 지역 군인들이 자주 가는 장소에서 3개월간 채집한 흙 10kg. 거기서 걸러낸 씨앗을 심자 채송화, 천일홍, 마리골드가 탐스럽게 피었다. 김 씨는 “DMZ는 식물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곳을 밟은 군화에 그곳의 희망이 묻어왔다. 언젠가 여기 핀 꽃들처럼 DMZ의 상처가 치유될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철원=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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