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년 만에 춘 기적의 탱고… 고마워요, 한국仁術”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4일 03시 00분


기도폐쇄 62세 러시아 무용가, 경희의료원서 보은의 공연

4분의 2박자 탱고 리듬에 맞춰 장밋빛 치마폭이 아슬아슬 휘날렸다. 백발 아래 창백한 이마에선 땀방울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하지만 그의 탱고는 10분 넘게 거침없었다. 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예정에 없던 탱고 무대가 마련됐다. 주인공은 지난해 10월 이 병원에서 성대절개수술을 받은 러시아인 류드밀라 콜파시니코바 씨(62·여·사진). 콜파시니코바 씨는 야쿠츠크에서 한때 잘나가는 무용가였다. 약 20년 전 ‘갑상샘 기능 항진증’이 발병했다. 병이 그의 발목을 잡으면서 춤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2005년 콜파시니코바 씨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갑상샘 절제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자마자 다시 ‘악몽’이 시작됐다.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수술 중 성대 신경이 손상됐으니 희망을 버려라”고 했다. 콜파시니코바 씨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었고 10년을 두문불출하며 폐인처럼 지냈다.

콜파시니코바 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지난해 6월 의료봉사를 위해 야쿠츠크를 찾은 경희의료원 조중생 국제진료센터장(65)이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조 센터장은 콜파시니코바 씨의 목 상태를 본 뒤 “한국에서 충분히 재수술이 가능하다”며 선뜻 무료 수술을 제안했다.

지난해 10월 1일 경희의료원에서 진행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목소리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10년간 그를 괴롭혀 온 호흡 곤란이 완전히 사라졌다. 숨이 가빠 포기했던 춤을 다시 출 수 있게 된 것이다. 1주일 후 콜파시니코바 씨는 한국을 떠나며 “다시 돌아오면 어떤 방법으로든 보답하겠다”고 의료진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진료를 위해 다시 찾은 병원에서 콜파시니코바 씨는 열정의 탱고 춤사위를 선보였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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