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흰물결 아트센터’ 화이트홀. 2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났다. 국내 문화계에서 아주 드문 공연. 푸치니의 라보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등 귀에 익은 오페라 아리아 10곡이 우리말 가사로 울려 퍼졌다.
공연을 감격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윤학 씨(57·사진). 한때 잘나가던 변호사였지만 지금은 문화공연기획자이자 흰물결 아트센터 대표다. 이 공연도 그가 기획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로 된 원곡을 번역했다. 굳이 한국어 가사가 필요할까. 음악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페라를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삶, 내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야 관객이 음악에 푹 빠져서, 자기 사랑과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겠어요?”
오페라를 우리말로 부르면 좀 어색하지 않을까. 윤 대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말뜻만 옮겨놓으면 그렇겠죠. 물론 지금까지는 그랬어요. 시를 산문화했고, 운율과 정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그래서 이번엔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성악가를 옆에 두고, 수십 번 노래를 불러보게 하면서 가장 적합한 말을 찾았어요. 번역보다는 작사에 더 가깝죠.”
그가 이해를 돕는다며 한국어로 번역한 아리아를 한 소절 들려줬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면 ‘딴딴딴 딴, 딴딴딴 딴’ 하면서 피아노로 반주되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이었다. 이 곡에서 ‘믿음의 안내로 가까이 오세요, 사랑의 축복이 기다리는 곳으로’로 직역할 부분을, 윤 대표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축복이 가득할 이곳으로’라고 번역했다. 확실히 입에 착착 붙었다.
그는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5기. 20여 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러다 가까운 신부의 부탁으로 폐간 직전이던 월간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1997년 인수했다. 문화공연과 인연을 맺은 첫 단추. 2007년부터는 아예 변호사 업무를 접고 본격적으로 문화공연 기획에 뛰어들었다.
잘나가는 변호사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직업을 바꿨을까.
“변호사는 머리로 살잖아요? 나는 가슴으로 살고 싶었어요.”
선문답 같은 말을 하는 그의 꿈은 ‘객석과의 공감’이다. 앞으로 1000곡을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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