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화 “北서 짐승처럼 살다간 아버지, 조국땅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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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보도 ‘탈북 딸’ 손명화씨 신원공개
“눈감으실 때도 고향에 묻히길 원해” 中반출 유해 국내송환 정부에 호소

손명화 탈북민복지연합회장이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탈북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국군포로였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그리운 내 고향 사모곡’을 연주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손명화 탈북민복지연합회장이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탈북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국군포로였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그리운 내 고향 사모곡’을 연주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북한에서 짐승처럼 살았던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모시고 들어와서 한국 땅에 묻게 되면 ‘내 아버지는 영웅이었고 대한의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국군포로 2세 탈북자인 손명화 탈북민복지연합회장(51)은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사단법인 물망초의 주최로 열린 탈북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이날 현재 중국 모처에 국군포로의 유해가 보관 중이고 자신이 그의 딸임을 스스로 공개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이 내용을 단독보도하면서 손 회장의 요청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본보 9월 11일자 A1면 참조… [단독]北의 국군포로 유해, 탈북 딸이 중국 반출

손 회장은 “아버지는 3년간 (6·25)전쟁에서 싸우다가 휴전을 3개월 남겨놓은 상태에서 포로가 됐다”면서 “이후 평생을 국군포로라는 딱지를 단 채 아오지탄광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며 울먹였다. 그는 “아버지는 임종 직전 맏딸인 나를 따로 불러 고향이 경남 김해라고 알려주며 ‘너만이라도 꼭 그곳으로 가고 (나중에) 내 유해도 묻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6년 탈북한 손 회장은 “유해를 모셔올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국군포로임을 몰랐으나 대학 진학 등에 제한을 받게 됐을 때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포기해라. 내가 국군포로여서 너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고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왜 이렇게 사느냐’며 괄시한 적도 많았다”면서 “한국에 와서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그랬던 내가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고 고백했다. 손 씨는 이날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인 ‘그리운 내 고향 사모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해 행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손 회장은 정부에 “유해 송환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부는 관련 대책회의를 몇 차례 가졌으나 ‘유해의 진위 여부가 확인된 뒤에야 예우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손 회장은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는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직접 유해를 국내로 옮겨오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국군포로#아버지#유해#탈북#손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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