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전설의 女기자’ 토머스, 天上 취재 떠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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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언론인 헬렌 토머스 93세로 별세

반세기 동안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장의 맨 앞자리를 지켜왔던 ‘미국 언론계의 전설’ 헬렌 토머스 기자가 20일 워싱턴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3세.

1920년 켄터키 주 윈체스터에서 레바논계 이민 2세로 태어난 토머스는 1942년 워싱턴 데일리뉴스의 복사 담당 직원으로 언론사에 들어온 뒤 기자가 됐다. 1950년대 UPI통신사에 들어가 가정사를 다루다 정부 부처를 출입했고 1960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과 함께 들어가 여성으로는 첫 백악관 출입기자가 됐다.

그는 2010년 6월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하며 날카로운 질문과 깊이 있는 분석 기사로 이름을 날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전을 끝낼 계획이 있느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미국이 그라나다를 침공할 권리가 있느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이라크전쟁을 언제 끝낼 거냐” 등 ‘돌직구’ 질문을 날렸고 부시 대통령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불렀다가 3년간 첫 질문권 및 맨 앞좌석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는 백악관 기자단의 첫 여성 간사, 미국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의 최초 여성 회장,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동행한 유일한 여성 기자 등 각종 ‘최초’ 기록도 보유했다. 그의 고정석이었던 기자회견장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는 그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아랍계 이민자의 후손인 그는 말년에 평생 반감을 가져왔던 이스라엘에 대한 과격한 발언 때문에 곤욕도 치렀다. 그는 2010년 5월 한 유대인 랍비에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미국 독일 헝가리 등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의 격분과 반발로 같은 해 6월 7일 소속 회사 허스트코퍼레이션과 출입처인 백악관을 떠나 버지니아 주의 지방지 폴스처치뉴스에 근무하기도 했다.

6권의 저서를 낸 토머스는 “사랑받고 싶은 존재가 되려면 기자가 되지 말라”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대통령이 언제나 깨어 있도록 하는 게 언론이다” 등 명언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여성 언론인의 벽을 허문 토머스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추모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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