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요트 할머니 “태평양 횡단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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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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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영 선장의 인생 2막
국내 최고령 여성 요트인 “죽을때까지 바다 누비고 싶어”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거친 파도와 싸우는 배원영 선장이 경남 고성군 당항포에서 요트
를 몰고 있다. 고성=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거친 파도와 싸우는 배원영 선장이 경남 고성군 당항포에서 요트 를 몰고 있다. 고성=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소녀시절부터 유난히 바다를 좋아했어요. 아직도 대양을 횡단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요트 타는 할머니’로 알려진 배원영 선장(63)의 말이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까지 나온 그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요트인이자 손자와 손녀를 둔 할머니이기도 하다.

최근 경남 고성군 당항포에 정박 중인 요트 위에서 그를 만났다. 요트라고 하면 누구나 호텔 같은 화려한 선실, 선상에서 벌어지는 파티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배 선장의 크루저 요트 ‘플로라’호는 작은 선실이 딸린 25피트(7.6m) 길이의 ‘조각배’ 수준이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이던 삶에 요트는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는 위로를 주는 존재였어요.”

남편의 사업 실패로 곤궁한 생활이 길어지던 1990년대 중반 배 선장은 어린시절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바다를 다시 생각했다. 빚을 내 장만한 중고 딩기(가장 작은 요트) 한 척을 가지고 무작정 한강 성산대교 밑 요트연습장을 찾아갔다.

젊은 남자들에게도 힘든 요트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돌풍은 수시로 배 선장을 차가운 바닷속으로 내동댕이쳤다. 요트가 수초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배 밑으로 잠수해 장애물을 끊어내는 험한 일도 해내야 했다. 곱던 얼굴은 검게 그을었고 부드러운 손은 점점 마디가 굵어졌다.

“요트에 몸을 맡기고 거친 파도를 헤치는 것은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어요.”

배 선장은 50세가 되던 1999년에 유일한 재산인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남편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경남 고성군으로 내려갔다. 2000만 원짜리 중고 요트 플로라호를 구입했고 나머지 돈은 현지 정착비용으로 썼다. 전업주부의 인생 1막에서 ‘선장’이라는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당항포에는 1년 내내 요트를 배우러 오는 동호인들로 붐빈다. 배 선장은 대학생들에게 자원봉사로 요트를 타는 법을 가르치고 동호인들과 팀을 구성해 해마다 열리는 요트대회도 준비한다. 지난해에는 제5회 이순신배 요트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요트로 몇 개월씩 걸려 대양을 횡단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린다”며 “당항포에 앉아서도 머릿속으로는 통영과 거제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가는 항로를 그린다”고 말했다.

“유명한 유럽의 스키퍼(선장) 중에는 78세 노인도 있어요. 나이도 많은데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연륜이 쌓이면 바람과 파도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요. 죽을 때까지 바다에서 자유롭게 요트를 탈겁니다.”

고성=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요트#할머니#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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