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수상 순간 청계천 등짐지던 열다섯때 기억 떠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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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피에타’ 김기덕 감독 귀국회견

“‘도둑들’ 같은 영화가 1500개씩 (스크린을) 잡고 있습니다. ‘피에타’는 좌석점유율이 45∼46%이고 이런 영화들은 15% 정도밖에 안 되는데, 1000만 기록을 세우기 위해 안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게 도둑들인 것 같습니다.”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52)이 1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영화관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감독은 수상의 기쁨으로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지만 피에타가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데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국 영화들이 국제무대에 많이 소개되고 이런 것들이 누적돼 저에게도 (상을) 줬습니다.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가장 기쁜 순간에 인생의 아픈 기억도 떠올렸다고 했다. “상을 받는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 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청계천 주변 공장 등에서 군 입대 전까지 일했다.

“상을 받기 전과 받은 후에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피에타도 예전 영화들처럼 묻힐까봐 걱정됐습니다. 정말 여기서 관객들이 봐 주지 않는다면 오라는 나라는 많을 거니 거기 가서 해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상을 받은 뒤 아리랑을 부른 데 대해서는 “중국이 자기네 무형유산에 등재했는데 아리랑은 부르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회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부르려고 했다”며 “아리랑은 누가 어디에 등록하든 우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예산 영화감독이 수상 때 고가(高價)의 갈옷을 입었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먼저 말을 꺼냈다. “윗옷이 150만 원이고 아래가 60만 원짜리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두드림’ 녹화를 가는데 입을 만한 옷이 없었어요. 인사동 어느 옷가게가 보여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속으로 ‘10만∼20만 원 정도 되겠지’ 했다가 옷값을 듣고 ‘큰일 났다’란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도 없고 앞으로 해외 영화제 1년간 입고 다닐 걸 생각해서 그냥 샀어요. 여자 옷인지도 몰랐습니다. 메이저 그룹 사모님들이 저녁 먹으러 갈 때 이보다 비싼 거 입고 갈 텐데 나도 1년 동안 입고 다녀야 되니 용서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이 자리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언론에 나가지 않고 시나리오를 쓸 겁니다. 다만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이전에 출연했을 때 약속했기 때문에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피에타 주연 여배우 조민수는 여우주연상을 놓친 것에 대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황금사자상을 받고 왕 같은 대접을 받아 모두 잊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민수는 당시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여우주연상으로 꼽았으나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은 추가 수상이 불가하다는 규정 때문에 수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에타는 황금사자상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피에타 관객은 8일 1만8000여 명에서 수상이 발표된 9일 2만8900여 명으로 1만 명 이상 늘었다. 박스오피스 순위도 8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채널A 영상] 김기덕 감독 “그게 도둑들 아닌가…”


#김기덕 감독#피에타#베니스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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