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 日帝 변조” 제기한 在日사학자 이진희 와코대 명예교수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폐암 투병 중 향년 82세 별세

중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왼쪽)와 이 비석에 새겨진 신묘년조 기록을 읽기 쉽게 변용한 사진. 고 이진희 교수는 비문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학설을 제기하며 이로 인해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검게 바탕을 강조한 부분)의 원래 내용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DB
중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왼쪽)와 이 비석에 새겨진 신묘년조 기록을 읽기 쉽게 변용한 사진. 고 이진희 교수는 비문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학설을 제기하며 이로 인해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검게 바탕을 강조한 부분)의 원래 내용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DB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의 일제 변조설을 제기한 재일 사학자 이진희 와코대 명예교수(사진)가 별세했다. 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교수는 폐암으로 투병하다 15일 사망했다. 향년 82세.

재일 한국인 1세대인 고인은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의 선구자로 1972년 발표한 논문 ‘광개토왕 비문의 수수께끼’를 통해 일본의 광개토대왕 비문 변조설을 제기해 한일 사학계에 충격을 줬다.

19세기 중국 지린 성 지안 현 퉁거우에서 광개토대왕 비가 발견된 뒤 이 비석은 한중일 사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일본은 1880년대부터 비문의 영락 6년(395년) 기사에 나타나는 “백잔(百殘·백제를 뜻함)과 신라는 예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신묘년(391년)에 왜가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을 깨뜨리고 OOO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부분을 들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일본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지역을 정벌해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고인은 능비의 초기 탁본을 비롯해 50여 종의 각종 자료를 정밀하게 검토한 후 “일본이 조직적으로 비문의 훼손된 부분에 석회를 발라 새로운 글자를 넣어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 역사학자들이 이를 알면서도 ‘임나일본부설’을 역사적 통설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한국 사학계의 체계적 반박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고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대 사학부를 졸업하고 조총련계인 조선고등학교와 조선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했으나 1971년 조선대를 사직하면서 조총련과 결별했다. 고인은 2000년 일본에서 출간한 자서전 ‘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에서 조총련과 결별하게 된 이유가 그의 첫 저술인 ‘조선 문화와 일본’(1966년)에 대한 조총련의 터무니없는 비판과 출간 저지 활동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는 고민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1984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엔 ‘계간 청구’ 창간(1989년), 한국문화연구진흥재단 설립(1989년) 등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한일관계사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조선 문화와 일본’ ‘광개토왕 비의 연구’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 등이 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부고#이진희교수#사학자#광개토왕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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