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 주인공 수희역 열연 뇌병변 1급 장애 박지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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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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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기 전에 수희도 여자란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박지원 씨(왼쪽)와 함경록 감독. ‘영화배우’인 박씨는 여유가 있었지만 함 감독은 쑥스러워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박지원 씨(왼쪽)와 함경록 감독. ‘영화배우’인 박씨는 여유가 있었지만 함 감독은 쑥스러워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박지원 씨(29·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는 뇌병변 1급 장애인 여성이다. 태어날 때 겪은 의료사고 때문에 말하기도 쉽지 않고 굽은 손가락 때문에 물건을 집는 것조차 힘들다. 걸음도 한쪽으로 기우뚱하다.

박 씨는 9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숨’에서 주인공 수희 역을 열연해 주목받고 있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주인공을 맡은 적은 있지만 극 영화에 헤로인으로 나온 일은 이례적이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장애인 여성을 연기했지만 그는 장애가 없는 직업배우였다.

함경록 감독의 ‘숨’은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여성 수희가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눈 뒤 임신하고,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낙태를 권유받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전북 김제시의 한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박 씨는 출연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냥 막연하게 20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다”고 태블릿PC에 글씨를 입력해 답했다.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기자를 위해 그는 컴퓨터에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글자를 쳐나갔다.

2009년 5월 전북 전주시 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박 씨는 이곳에서 영화 강의를 맡은 함 감독에게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애초에 함 감독은 직업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장애인만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을 담으려면 장애인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영화 촬영에 노출신도 있었지만 박 씨는 욕심이 났다. 영화를 위해 학교를 두 학기 휴학했다. 4개월간 수희 캐릭터에 대해 함 감독과 토론하는 등의 준비를 거쳐 보름 동안 촬영했다. 감독과 스태프는 박 씨의 ‘자연스러운’ 장애인 연기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수희는 장애인이기 전에 (사랑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자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여성을 제3의 성으로 보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오로지 장애인으로…. 이런 편견이 깨졌으면 해요.”

함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비장애인과는 다른 존재로 보기보다 우리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씨의 꿈은 전공을 살려 지역아동센터 소장으로 일하는 것.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면 다시 영화를 찍고 싶어요. ‘오아시스’를 봤는데 극중 공주(문소리)의 연기는 좀 오버한 면이 있더라고요. 실제 장애인의 모습은 달라요.”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벨기에 브뤼셀유럽영화제 황금시대상,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버터플라이상 등을 수상했다. 연말 신인여배우상이 욕심나지 않느냐고 묻자 박 씨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떨려서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이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를 묻자 함 감독은 박 씨가 주진모를 가장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마냥 씩씩하던 박 씨의 두 볼이 빨개졌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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