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성희]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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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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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는 ‘밥한끼’ 아닌 과잉복지 판단하는 역사적 선택”

오세훈 서울시장은 키가 훌쩍 크고 인물이 좋다. TV 토론 사회자를 했을 정도로 말을 잘하지만 제스처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가 모처럼 두 손을 들었을 때 한 커트 잡았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오세훈 서울시장은 키가 훌쩍 크고 인물이 좋다. TV 토론 사회자를 했을 정도로 말을 잘하지만 제스처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가 모처럼 두 손을 들었을 때 한 커트 잡았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서울시장실은 공사 중인 서울시청 본관 대신에 서소문 다산1관 건물 7층에 있었다. 오세훈 시장은 물 폭탄이 할퀴고 지나간 수해 현장을 사흘째 돌아보았다. 인명 피해가 다수 난 서초구에 TV와 신문의 카메라가 집중되는 바람에 오 시장이 현장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서초구는 첫날만 가고 수해를 크게 입은 동작 관악 금천 강동구를 많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수해 현장에서 시장실로 돌아와 노타이 감색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수해 현장 냄새가 물씬 나는 복장이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티내기를 싫어하는 성격인 모양이다.

―무상급식 반대운동에 올인 하느라 수해대책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세훈이 수해 예방에 소홀했다고만 때려도 될 텐데 민주당이 주민투표 때문에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인터넷 괴담 수준의 논평을 궁리할 시간에 시민과 재해 복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참 나쁜 정당이다.” 첫 질문이 좀 까칠했던지 시장의 답변도 터프했다.

―민주당에서 주민투표에 들어갈 예산을 무상급식에 쓰라는 주장을 하는데….

“주민투표에 들어갈 예산이 180억 원인데 무상급식 예산이 작년 말 물가기준으로 5000억 원이다. 올해 식자재가 얼마나 올랐나. 게다가 무상급식 예산은 매년 시행하는 거고, 예산액도 늘어날 것이다. 이건 ‘밥 한 끼 먹이자’는 데 대한 투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과잉복지로 가느냐, 필요한 복지로 가느냐에 대한 시민의 판단을 구하는 역사적 투표다. 이번에 서명자가 80만 명이다. 필체가 다르거나 주민등록번호를 표기하지 않은 서명을 걸러내도 51만 명이 남는다. 1000만 서울시에서 50만 명이 서명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관제-불법-꼼수’ 투표라고 비난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해서도 ‘외눈박이 지식인’이라고 공격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를 풍기던 오 시장에게 이렇게 공격적인 면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주당과 진보교육감에 대해 가시 돋친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일부러 독하게 구는 것 아니다. 인간 오세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와 관련해 정보 제공은 가능하지만 독려는 안 된다고 유권해석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전면 무상급식이냐, 소득 하위 50%에 대한 점진적 무상급식이냐를 주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추진한 서울시장이 투표 권유도 못한다니 다소 모순돼 보인다.

“정책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투표 독려행위는 찬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본다. 선관위 해석은 상식에 맞지 않고 주관이 개입된 과잉해석이다.”

―투표 결과에 자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자신 있어 시작하지 않았다. 이걸(주민투표) 대선을 위한 승부수로 보는 시각이 있는 걸 알고 있다. 사실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는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론조사가 유리하게 나온다고 해서 그런 해석을 하는 것은 억울하다. 누군가는 포퓰리즘 복지에 대한 민의(民意)를 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시작했다. 우선 ‘오세훈은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는 누명을 벗었다. 지금은 오 시장이 부잣집 애들 말고 가난한 애들한테 점심 주자는 거구나 하는 정도는 모두들 알게 됐다. 민주당이 처음 ‘보편적 복지’ 들고 나왔을 때 국민이 혹한 건 사실이다. 보편적 복지? 섹시하지 않나. 그런데 ‘3무1반(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이슈가 일어나면서 지금은 되레 복지 때문에 내 아이들이 앞으로 힘들게 살겠구나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상황이 유리하게 바뀌고 있는 거다.”

정치권에선 주민투표의 결과에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거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패배해 사퇴를 하면 내년 총선 전에 보궐선거가 치러지고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민주당 시장이 탄생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서울시에 지역구를 가진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사코 반대한다. 서울시의회와 구청장이 대부분 민주당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민주당 서울시장이 탄생하면 총선 대선을 치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발의하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는데 패배하면 시장직을 떠나겠다는 말인가. 사퇴를 하면 언제쯤 할 생각인가.

“처음엔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시동 걸기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서명운동에 나서는 분들께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많은 분이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의미를 시장직을 버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주변에 의견을 구했고 지금도 구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패배하면 장렬하게 전사(戰死)하라는 의견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 반대더라. 정책문제에 대해 정치생명을 걸면 서울시민의 순수하고 합리적 선택을 정치화하는 부작용이 있고 이 사안 자체가 정치화된다는 조언이 더 많았다. 이에 대한 확답을 원하는 줄은 알지만 ‘고민 중이다’라는 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 시장의 말은 주민투표의 결과에 관계없이 시장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가 시장직을 걸더라도 주민투표가 임박한 시점에 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면 투표율을 높여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을 이끌어내 개표를 할 수 있게 되겠지만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향하면 주민투표의 진의가 왜곡되고 서울시장 신임투표, 또는 총선 대선의 전초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라이벌이다. 차기 또는 차차기에서 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 지사는 6월 22일 경기도청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무상급식이 주민투표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원도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3권 분립의 한 축”이라며 “다투더라도 의회에서 해야지 그것을 밖으로 가져 나가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민투표로 가져간 것과 오 시장의 시의회 불출석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김 지사에 대해 섭섭한가.

“많이 섭섭하다. 그분의 처지는 120% 이해한다. 이미 선택(친환경 무상급식 실시)을 했는데 자기 선택을 부정하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나. 다만 그분의 행동은 모순이다. 김 지사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전임 임기 때는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싸우지 않았나. 그런데 원칙을 번복했다. 아픈 부분을 후벼 팔 필요는 없으니 그만하겠다.”

언젠가 김 지사는 “나는 누구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지역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한 적도 있다.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나.

“호감은 준다고 본다(웃음). ‘라이커블(likable)하다’고 해야 하나. 취임 초기에 ‘퍼포먼스(실적)’가 없을 때는 솔직히 이런저런 외부 평가에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이젠 (평가에서) 자유로워졌다. 자기에 대한 평가는 자기가 가장 모른다. 인사를 해보면 안다. 사람을 쓰기 위해 동창회, 전 직장, 정보기관 등 여러 군데 평판 조회를 해보면 평가가 다 똑같더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 그 사람이 만들어온 이미지가 그 사람 자체다.”

―교육감을 선출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자체장과 교육감을 갈등구조로 몰아가는 이런 제도는 곤란하다. 대부분 나라에서 시장이 교육감을 임명한다. 임기 중 지자체장이 꿈과 비전을 펼쳐보라는 것이고 교육정책이 잘못돼도 시장이 책임지는 거다. 아니면 최소한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동반 선출되는 러닝메이트제라도 해야 한다.”

―시장도 시민이 뽑았지만 시의원도 시민이 선출했다는 김 지사의 지적은 옳다. 오 시장의 대(對)의회 행적을 보면 ‘반(反)의회주의자’란 비판이 나올 만하다.

“각오했던 바다. 내 행동이 단기적으로는 의회를 무시한 것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공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의석 4분의 3을 가진 의회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다. 4분의 3이란 수치는 의회독재를 가능하게 한다. 의회는 입법권이 있고 시장은 집행권이 있다. 그런데 시의회의 행태를 보라. 예컨대 노들섬사업에 대한 예산을 깎을 수는 있다. 예산 삭감은 시의회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 시의회는 노들섬사업 폐지조례를 만든다. 조례 자체를 말살하는 것은 입법재량권을 벗어난 일탈이다. 이런 의회독재의 조짐을 목격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세훈을 코너로 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학습효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굳어지는 분위기인데….

“그분에 대해선 정치전문가들이 더 잘 알거다. 내가 얘기하면 불필요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나는 묵묵히 내 갈길을 가겠다.”

―‘박근혜 복지’에 대한 의견은….

“생애주기별 복지 정책을 꼼꼼히 읽었지만 디테일(detail)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평가하기에 이르다. 무상급식에 대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복지에 대해) 결심이 안 섰다고 해석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김 지사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던 오 시장이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꼈다.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이 뭐라고 보나.

“첫째는 지속가능한 복지다. 보편적 복지는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둘째, 품격 있는 문화국가다. 문화국가가 되지 않으면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 아닌가. 그래서 디자인을 강조하는 거다. 셋째,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이 세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론을 들어봤나.

“내가 강남우파인데 강남좌파 언행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솔직히 이해가 안 되더라(웃음). 끼워준 것은 고맙다.”

‘범생이’ 이미지의 오 시장이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4분의 3을 차지한 서울시의회와 싸우며 ‘독종’이 돼 가고 있었다. 오 시장이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이끌며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쩌면 이번 승부수는 오 시장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정성희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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