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운암중학교 ‘기적의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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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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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유해열 교사가 창단… 교과부 지원 얻어 내달 첫 공연
암투병 하며 도운 유교사 아내 4.7cm 암세포 0.3cm로 줄어

‘한국판 엘시스테마’를 꿈꾸며 7년째 학생 오케스트라를 꾸려온 유해열 교사와 부인 권미준 씨가 다음 달 9일 꿈의 연주회를 앞두고 웃고 있다. 오산=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한국판 엘시스테마’를 꿈꾸며 7년째 학생 오케스트라를 꾸려온 유해열 교사와 부인 권미준 씨가 다음 달 9일 꿈의 연주회를 앞두고 웃고 있다. 오산=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6년 전부터 ‘한국판 엘시스테마’를 꿈꿔온 경기 오산시 운암중학교는 다음 달 9일 개교 이래 가장 큰 행사를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학교 학생과 인근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로 구성된 ‘물향기 엘시스테마 오케스트라’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이게 됐기 때문이다.

‘엘시스테마’는 ‘시스템’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1975년 베네수엘라의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사회 변화를 위해 시작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통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협동과 이해 책임감 등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운암중 오케스트라는 2005년 음악교사로 온 유해열 교사(52)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유 교사는 “처음 부임했을 때 자리에 앉아 채 15분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 주변은 교육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주변에 동탄신도시 등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성적이 좋던 아이들은 신도시 학교로 전학을 갔다. 1999년 학년당 12학급으로 개교했지만 지금 남은 것은 학년당 6학급에 불과하다.

유 교사는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합주를 통해 경쟁과 조화, 인내심과 집중력을 가르치기로 했다. 2005년 3월 15명으로 시작한 음악반이 자리를 잡는 데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했다. 모두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 아이들. 악기 연주가 처음인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유 교사는 악보 읽는 법에서부터 연주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치고 양로원과 병원 등으로 봉사 연주를 다녔다. 아이들 밥값과 악기 구입비 등 연간 1500만 원이 넘는 돈은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마음고생과 재정적 부담으로 흔들리던 유 교사를 지탱해준 것은 아내 권미준 씨(49). 피아노를 전공한 권 씨는 아이들에게 음정부터 예의까지 일일이 가르쳤다. ‘교사도 아니면서 왜 야단을 치느냐’는 학부모 항의에는 차분하게 교육 목표를 설명했다. 2009년 10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도 권 씨의 노력은 그치지 않았다.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암 세포가 전이된 상태에서도 권 씨는 단 한 번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연습에 빠지지 않았다. 이런 부부의 노력에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5분을 못 배기던 아이들이 이제는 네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앉아 연습에 집중한다. 어느덧 고3이 된 이지원 양(19)은 “선생님과 사모님처럼 소외계층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며 음악교육학과 진학을 준비 중이다.

유 교사 부부의 이런 노력 끝에 운암중은 3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전국 65개 학생 오케스트라 중 한 곳으로 선정돼 다음 달 9일 경기 오산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때 4.7cm까지 자랐던 권 씨의 암 세포가 0.3cm로 줄어든 것.

유 교사는 “아이들과 어울려 음악 연주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치료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며 “아내는 아이들과 멋진 공연을 한 뒤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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