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찬씨 당시 숨진 아들 김남훈 경사와 ‘마지막 작별’
‘그날’이후 단 하루도 술잔을 놓은 날 없어
눈물-아픔-원망의 현장서 아들도 영영 떠나버렸어
용산 화재참사 당시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 씨가 1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철거현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제 아들이 영영 떠나버렸어.”
검게 그을린 5층짜리 건물이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김권찬 씨(56)가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그는 용산 철거민 화재참사 당시 철거민 5명과 함께 숨진 경찰관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다. 무너진 건물 안쪽으로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나선형의 좁은 계단을 가리키며 “저게, 우리 남훈이가 올랐던 계단이여” 하고는 돌아서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해 1월 20일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남일당’ 건물이 참사 약 22개월 만인 1일 철거됐다. 지난달 중순 용산구청과 용산4구역 재개발사업조합이 건물 철거에 합의함에 따라 이날 압쇄기 등을 동원해 철거작업을 마친 것.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 회원과 희생자 유족 등 20여 명은 철거에 앞서 건물 뒤편 공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에 반대하고 검찰 수사를 규탄했다.
김 씨는 한동안 철거현장에 다가서지 못하고 10여 m 떨어진 주변을 맴돌았다. 진상규명 위원회 회원 한 명이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라고 외치자 김 씨는 잠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남일당이 철거되기 전 현장에 미리 도착해 건물 구석구석을 사진기에 담았다는 김 씨는 “저분들 다 가시면 가까이 가봐야지”라고 했다. “저분들한테 원망도 미움도 없지만, 혹여 내가 ‘경찰살인’이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 서 있게 되면 내 아들은 물론이고 15만 경찰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지요.”
용산 화재참사 현장인 한강로2가의 남일당 건물이 1일 22개월 만에 철거되는 가운데 한 철거민 희생자 유족이 철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개인택시 운전사인 김 씨는 한강로2가를 지날 때면 건물 방향을 쳐다본다고 했다. “여길 지날 때 간혹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고 당시 사건을 떠올리는 손님들이 있다”며 “그때마다 손님을 내려주고 나 혼자 말없이 운다”고도 했다. 김 씨는 아들을 보낸 뒤 단 하루도 술을 거른 날이 없다. 그의 아내는 얼마 전 연평도에서 두 명의 군인이 전사했을 때 “우리 아들 같아서 이틀을 두고 울었다”고 했다. 아내는 가슴이 떨린다며 철거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 진압에 나선 경찰을 ‘살인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정당한 법집행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폭력시위 진압에 나서는 경찰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아들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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